국민회의 김대중총재는 호주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창당 1주년 기념식 연설문안을 작성하는데 고심해야 했다.

창당당시의 감격은 아직 새롭지만 97석을 거느린 초거대야당 민주당을
깨면서 치렀던 지난 4.11총선에서 목표에 미달하는 성적을 거둔 아픔이
생생하다.

특히 30여년간의 정치생명을 걸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어야할
대권도전에 대해서는 정치권 전반의 사정은 물론이고 당내에서도 이상기류가
만연하다.

대권후보경선을 주장하며 내놓고 도전장을 내민 김상현지도위의장은 물론
차차기대권주자로 꼽혀 왔던 정대철부총재도 "대안부재론"에 가깝던 입장
에서 방향을 선회, 우회적으로나마 경선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조세형부총재같은 중진들은 물론 41명의 초선의원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DJ의 당선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어찌보면 "난공불락"이었던 DJ의 리더십이 누수현상을 보이고 있다고도
볼수 있다.

DJ가 "바늘구멍찾기"로 비견되는 대권도전의 해법을 아직 분명하게 찾은것
같지는 않다.

다만 6일 기념식 연설을 보면 DJ의 "대권구상" 윤곽을 엿볼수 있다.

김총재는 이날 연설 서두에서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해 대여투쟁에 나서는
것은 물론 "야당은 분열만 한다"는 주위의 생각을 해소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김총재는 이와함께 "경제회복 국민통합 통일주도의 새정치는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로 이러한 3대과제의 실천은 여야간 정권교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김총재의 이날 연설은 앞으로 자민련과의 공조를 토대로 경제난등
3대이슈를 축으로한 강도높은 대여투쟁을 통해 정권교체의 불가피성을
확산시킴으로써 대권도전을 관철, 국민의 마지막 심판을 받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총재는 앞으로 자신의 대권논리인 "지역간 정권교체론"과 "거국내각
체제론"을 보다 강도높게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당내 민주화" 문제가 선결돼야 하리란 것이 정치권
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총재가 이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당내 대권후보결정과정은
물론 야권후보단일화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김총재가 당초 연말로 예정됐던 대권도전선언을 내년초로 연기한 것도
이같은 기류를 감지했기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따라 김총재는 일단 연말까지 당내 민주화를 최대현안으로 하여
부총재단에 대한 총재권한이양에 이어 후속조치를 강구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대권후보경선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김의장등 당내의 이질적인
목소리를 수렴하는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 문희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