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인 환자와 그 가족들이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의료분쟁 발생건수는 연간 2천여건.

소송건수도 연간 3백5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분쟁으로 환자와 그 가족은 물론 의료종사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10여년전부터 분쟁조정제도를
만들 기 위한 논의를 해왔다.

정부는 지난 14대국회에서 의료분쟁조정법안을 성안, 국회에 제출했으나
대한의사협회등 이익단체의 반대에 부딪쳐 입법화되지 못하고 회기만료에
따라 자동폐기됐다.

정부는 15대국회에서 다시 입법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중인 의료분쟁조정법안은 의료사고 발생시 소송에 앞서 조정을
거치도록 하고 사고에 따른 손해를 공제회비로 보상토록 하고 있다.

의료분쟁을 조정할 기구는 보건복지부에 중앙의료분쟁조정위원회를,
시.도에는 지방위원회를 설치하게 된다.

피해보상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의료배상공제조합의 책임공제에 가입,
공제료를 납부하면 조합에서 부담토록 한다.

대신 누구든지 의료분쟁을 이유로 병원의 의료시설 약품등을 파괴.손상
하거나 의료기관을 점거해 진료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자는게
정부안의 큰 골격이다.

이에대해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등 이익단체들의 반발은 거세다.

이들 단체는 피해자가 의사의 처벌을 원치않을 경우 국가가 공소를 제기
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조항"을 둘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또 혈액형이 다른 혈액수혈등 명백한 의료사고외에는 면책
특례조항을 둘 것과 공제회비의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는 것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나 소비자단체은 의료단체들의 주장가운데 특례조항은
다른 법과 형평에 어긋난다며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고
재정경제원은 공제조합 재원의 국가부담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을 놓고 이처럼 각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15대국회
에서도 입법화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봉생병원장이기도 한 신한국당의 정의화의원은 "의료인들이 편한
마음으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의료인들에 대한 형사적 처벌은 피해야 하고 의료인들에게 공제비를
부담토록 하는 것은 병원경영의 압박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원은 또 "의사들의 공제비부담을 덜어줄기 위해 의료보험제도를 대폭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병원협회 한 관계자는 "보상기금 전액을 의사들에게만 부담토록 하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하다"며 "국가 보험업계 의료인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해야 한다는데는 정부나 의료계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이 합리적으로 조정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의료계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규명된 의학에 의존하더라도 수술도중
사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법제정도 중요하지만 의료인과 소비자의
신뢰회복이 선결돼야 한다"고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김호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