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회담은 월드컵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데서 가장 큰 의미를 찾을수 있다.

특히 비중이 크진 않지만 그동안의 양국정상회담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했던
무역역조시정문제가 빠지고 투자확대를 통한 양국기업간 전략적 제휴 등
산업.기술협력가속화가 합의내용으로 명문화된 것은 앞으로 양국간 경협
방향이 크게 달라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으로 주목된다.

올들어 지난 5월까지의 대일무역수지적자는 60억달러를 돌파, 전체무역수지
적자의 80%를 웃돌 정도로 양국간 무역불균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무역역조의 개선문제가 빠진 것은 이에 대한
양국정부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일시적인 구매사절단파견이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기술이전요구
등으로는 역조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양국기업간 투자확대를 통한 전략적 제휴 등 산업.기술협력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방향으로 경협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한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기업들이 이제 일본기업과 수평적인 제휴를 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정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는 2000년까지 수입선다변화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발표, 수평적 협력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이런 수평적 협력의 틀은 과거사에 얽매여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
가 항상 따라 다니는 양국관계를 다음세대까지 물려줘서는 안된다는 양국
정상들의 공동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3차례에 걸쳐 이뤄진 정상회담은 양국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현안
이나 과거사문제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데 여러면에서 초점이
맞춰졌다.

이와관련,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나고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월드컵
대회가 양국관계자의 공동작업에 의해 성공리에 개최되어 양국 국민들간의
우정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회담의 성격을 규정했다.

이번회담의 합의사항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인 양국간 청소년교류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양국간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을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교류를 통해 상호이해
와 신뢰의 기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양국정상은 인식을 같이했다.

양국은 지난해 4천5백명정도였던 양국정규프로그램에 의한 청소년교류수준
을 오는 2000년까지 1만명선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스포츠및 전통문화교류를 확대키로 결정한 것도 양국민의 이해를 증진하고
우호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제시됐다.

스포츠교류는 스포츠선수들간의 친선은 물론 관중들의 성숙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정부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문화교류의 경우 일본의 대중문화를 당장 들여오기는 어려운 만큼 전통
문화사절단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전통문화교류부터 추진키로 했다.

상대국과 양국관계역사에 관한 공동연구를 활발히 추진하기 위해 민간
지식인들에 의한 역사연구에 관한 회의를 조기에 구성키로 합의한 것도
양국의 이해증진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월드컵공동개최와 관련, 이번회담에서 "공동위원회" 구성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양국이 긴밀한 연락체제를 유지해 나가기로 합의했을 뿐이다.

월드컵공동개최에 대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중재역할을 무시하고 정부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일본측 입장이 설득력을 발휘, 정부차원
의 공동기구설치는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양국정상들이 격의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자주 만나기로
하고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획정에 관한 교섭을 촉진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도 주목할만 하다.

이번 회담은 시종일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서귀포=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