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권도전을 향한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그의
"대권구상"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거국내각체제를 통한 지역간 정권교체론"이
대권구상의 요체다.

정치권은 DJ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이원집정제식의 권력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는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총재는 이제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정권을 창출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과거의 "4자필승론"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난 셈이다.

정치권은 특히 그의 거국내각제론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같은 권력구조는 내각제개헌을 주장하고는 있으나 현실적 벽에 부딪쳐
있는 자민련이나 독자적인 대권후보를 내기 어려운 TK세력을 한데 묶을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김총재는 최근 공식석상에서 "현행 헌법아래서도 운용의 묘를 살리면
내각제적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면서 "다음에 누가 집권하든 거국내각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개헌없는 내각제"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4.11총선참패로 정치적 궁지에 몰려있는 DJ가 대권가도
의 돌파구를 트기 위해 뽑은 "비장의 카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매개로 자민련등과의 지역연합을 성사시켜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면서 국민회의를 포함한 야권내의 양김배제론과 대권경선론등
"이질적인"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다목적용 포석이라는 것이다.

국민회의내에서는 "DJ 대통령,JP 총리"라는 구도라면 "내각제를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잡을수 있다"는 입장인 자민련과의 연합이 성사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또 내년 대선에서 최대의 변수가 될것으로 보이는 TK와는 따로 차차기대권
의 길을 터주는 협상카드를 통해 연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국내각제론은 세번에 걸친 DJ의 대권도전에 번번이 치명적인 걸림돌이
돼왔던 "호남대 비호남구도"를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복선도 깔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DJ의 대권구상에 대한 JP와 TK출신들의 반응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JP는 아직 당론으로 공식화된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국이 여대야소로 바뀐 상황에서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진
JP로서는 여권과의 제휴를 위한 길이 열리지 않는한 자신의 독자출마보다
DJ와 손잡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JP가 신한국당의 과반수의석확보에 맞서 30여년간의 정치역정과는 궤가
다르게 "거리투쟁"에 나서는등 야당정치인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TK 역시 분명한 입장표명은 없다.

다만 자민련에 둥지를 튼 박철언부총재의 DJ.JP간 야권후보단일화론,
김복동수석부총재의 제3후보추대론등이 모두 두김씨의 동시출마로는 어렵다
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TK가 거국내각제론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와관련, DJ는 지난총선전 이미 박준규최고고문및 박부총재와 몇차례
만나 총선이후의 정국구도등에 관해 밀담을 나눈 것으로 확인돼 주목되고
있다.

특히 박부총재의 경우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지난달말 외유를 떠나기전
DJ와 비밀리에 회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DJ와 TK간 사전교감 여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DJ는 정치권의 반향이 의외로 커지자 "공론화는 연말께로 미루자"며 일단
한발자국 물러난 상태다.

여기에는 자신의 대권도전문제가 너무 일찍 쟁점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정치권에서는 야권내 대권논의가 시간이 흐르면서 거국내각제론을 축으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며 이에따라 DJ와 JP, TK간 대권을 둘러싼 수면
하의 암중모색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희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