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이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할 유일한 무기인 변호인측의 반대
신문을 돌연 포기하자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다가 노씨측의 변호사인 김유후변호사가 재판을 앞두고 "2차공판에서
변호인 반대신문을 다 마치지 못할 가능성이 많아 재판부에 재판기일을
하루 더 요청할 생각"이라며 반대신문에 큰 무게를 뒀음을 감안할 때 그
의아심은 더욱 커진다.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노씨측의 갑작스레 태도변경에는 크게 세 가지 속셈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국민들이 현재 노씨에게 갖고 있는 감정을 생각할 때 장황한 반대
신문은 오히려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는 것으로 비춰져 여론을 오히려 악화
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변호사가 법정에서 낭독한 노씨의 "반대신문을 하지 않는 사유"중
"본인 이외의 어느 누구도 상처받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면서 변명을 하거나
처벌을 완화하는 일체의 변호나 반대신문은 원하지도, 응하지도 않겠다"고
밝힌 대목에서 그 의도를 엿볼수 있다.

다음으로 반대신문을 하지 않는 것이 재판부에도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노씨의 혐의내용으로 볼 때 재판부가유죄판결을 내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만큼 최대한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법원은 공직자의 수뢰사건을 다룰 때 피의자가 어떠한
형태로 돈을 받았든 이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수뢰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지방 도시의 말단 구청 공무원이 적법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한참 시간이
지난뒤에 사례비조로 2백만원을 받아도 수뢰로 인정되는 판에 대통령이
기업총수들로부터 2천8백39억원을 받았다면 어떠한 재판결과는 나올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변호인단으로서도 노씨가 받은 돈이 "대통령 직무수행을 위한
불가피판 통치자금"이라고 애써 강변해 봤자 "별무소득"이란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만큼 참회의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형량이라도 조금 깎아보려는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노씨의 이날 침묵이 혐의내용에 대한 전면 시인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씨는 "반대신문을 하지 않는 사유"에서 "당시의 정치적 관행에 따라
어떠한 이권이나 대가와 관계없이 기업인들의 성금으로 알고 통치자금을
마련해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며 돈의 성격이
"성금"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씨는 또 "퇴임시 예상외의 돈이 남아 이 또한 나라와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할 때 쓸 계획이었다"며 자신이 피렴치한 부정축재범이 아님을 강조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노씨는 사실상 뇌물성을 전면 부인하는 취지의 반대신문
사유를 통해 가장 짧은 반대신문을 한 효과를 노렸음을 알 수 있다.

즉, 노씨의 반대신문 포기의 이면에는 자신을 수뢰범으로 모는 검찰에
대한 "침묵시위"의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함께 대선자금 지원문제등 현정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술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현정권과의 교감의 여지도
남겨 놓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노씨의 이같은 침묵이 향후 재판전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에 대한 법조계 안팎에서는 조기 종결을 점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우선노씨측의 김변호사가 반대신문을 거부하면서 차후에 필요하다면 반대
신문을 하겠다고 하자 재판부가 "앞으로 그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해 이 사건을 오래 끌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또 기업인들도 노씨에게 건넨 돈이 준조세 성격의 성금이었음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이 재판은 돈의 성격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만을
남겨놓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30부가 12.12및 5.18사건까지도
도맡게 됐음을 고려한다면 노씨 사건은 앞으로 1~2차례 더 공판을 가진 뒤
1심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성민.한은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