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으로 생리와 환경이 다르던 부처가 합쳐지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특정 보직에는 합치기 전 두부처 출신자들을 번갈아가면서 배치하는
"무지개떡 인사"라는 새풍속도가 생겨 났는가 하면 양쪽의 승진속도 차이로
선후배가 뒤바뀌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종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퇴직후 자리"가 보장되기도 하고
공격과 수비위치가 뒤짚혀 설욕전을 펼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무지개떡 인사 대상 보직은 총무과장과 공보관 비서관등.

장관의 핵심측근인이 자리는 돌아가면서 맡아야 된다는 지적에 따라 출신
부처를 가려 번갈아 맡고 있다.

예컨데 재경원 총무과장은 한번은 기획원 출신이,그 뒤에는 재무부출신이
맡는다.

아무리 적임자가 있더라도 이것은 대원칙이어서 바뀐 예가 없다.

가뜩이나 승진속도가 다른 데다가 이같은 "무지개떡 법칙"까지 지키다 보니
인사가 뒤죽박죽이 되는 수가 적지 않다.

심한 경우를 들자면 건설교통부의 경우 승진적체가 심하던 건설부출신은
행시 15회가 아직도 과장을 맡고 있는데 비해 교통부출신은 16회가 두단계나
높은 1급실장을 맡고 있다.

재경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과거 기획원의 승진속도가 2년정도 빨랐기 때문에 행정고시 기수가 같아도
기획원출신은 고참국장인 반면 재무부출신은 이제겨우 보직국장을 맡거나
심지어는 아직 과장자리를 맡는 부이사관인 경우도 있다.

현직도 그렇지만 퇴직이후의 진로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과거엔 경제기획원 사람들이 금융기관장 자리를 꿈도 꾸지 못했었다.

기획원 직원들이 재무부직원들을 비판할 때도 바로 이대목을 걸고 넘어질
정도였다.

금융기관이 재무부 산하단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합이후엔 기획원출신이 금융기관은 물론 과거 재무부 쪽의 투자
기관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상대편만이 누리던 재미를 같이 끼어들어 보고 있는 셈이다.

생리가 다른 두 부처가 한살림을 차리면서 결제풍토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 기획원 사람들은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어서 사무관이 담배를 문채
과장에게 보고서를 드리밀어도 하자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재무부에서는 부동자세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공손한 태도를 요구
했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부서장을 다른 부처출신이 맡으면서 다소 엄격하던
재무부출신들은 부드러워진데 비해 기획원출신들은 오히려 엄격한 쪽으로
바뀌며 상호수렴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재경원과 건교부는 통합이후에 대체로 과거에 규제를 쥐고 있던 쪽의
기능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잡혀가고 있다는 평.

지금의 업무비중을 보면 사실상재경원은 재무부 쪽이, 건교부는 건설부
쪽이 상대방을 흡수한 결과가 됐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돈줄을 쥐고 있는 부서의 역할이 두드러져 아이디어만을 무기로
했던 기획원의 기능은 사실상 증발됐고 건교부에서도 국토이용규제를 쥐고
있었던 건설부의 기능에 교통부의 국토이용 기능이 뭍혀 버렸다는 얘기다.

이런 생리차이나 부작용들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게
과천관가의 반응이다.

< 안상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