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와 5.18 등의 유혈사태를 통해 최고의 권좌에 올랐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3일 군형법상 반란수괴등의 협의로 전격 구속됐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지를 짓밟고 철권을 휘둘렀던 전두환씨의
육사생도시절 대장예편식 제11대 대통령취임식 5공청문회때의 모습 등
영욕의 세월을 화보로 엮어봤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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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3일 출석요구를 거부한 전두환전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수괴등의
혐의로 경남합천 생가에서 압송,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함으로써 온갖 곡
절끝에12.12사건및 5.18사건이 15년만에 역사의 단죄를 받게 됐다.

국군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 부장서리 국가보위입법위원회 상임위원장
육군대장제11-12대 대통령등 화려했던 전씨의 영광도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부대를 동원,상관을 연행하고 중앙청 국방부 육본등을 점령해
군주도권을 장악한일개의 반란수괴로 전락했다.

마지막순간까지 대국민성명을 통해 검찰의 소환을 완강히 거부하며 버텼
던 전씨도 과거의 영광이 벗겨진채 국가의 기강과 헌정질서를 파괴한 초라
한 수인의 모습으로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전씨의 영욕은 모반과 군사구테타로 점쳤됐던 우리 현대사가 낳은 "역사의
사생아"인 셈이다.

전두환씨의 빗나간 군인의 야망은 무고한 시민들의 학살등을 통해 개인적
으로는 대통령이라는 최고 명예에 오르게 했지만 민주주의를 열망한 "서울
의 봄"은 꽃망울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고 말았다.

청년 전두환의 권력에 대한 집념은 지난 51년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55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소위에 임관하면서 시작됐다.

4년제 정규육사로는 첫기수인 11기는 고박정희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면서
군요직을 두루 거쳤으며전씨는 정규육사출신의 사조직인 "하나회"회장을
맡으면서 군내 향후 실력자로 등장했다.

70년에는 제9사단 29연대장으로 월남에 파병돼 야전경험을 쌓았으며 73년
준장진급,77년 소장진급등 육사11기의 선두주자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79년 국군보안사령관 재직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대통령암살사건(10.
26)을 수사하는 합수부장으로 권력찬탈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전씨는 80년 노태우,박희도등 야전부대장들로 구성된 하나회 멤버들을
동원,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을 불법연행하고 군내
반대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군주도권을 완전 장악하는 한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철권의 실력자로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
냈다.

또 중앙정보부 부장서리를 겸임,국가정보를 독점하고 중장진급후 몇개월만
에 대장으로 예편한뒤 최규하대통령의 하야이후 체육관선거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5공을 개막했다.

전씨는 7년 단임제 개헌을 통해 88년까지 제 12대 대통령을 지내고 12.12
군사반란의 핵심세력인 노태우씨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물러났다.

정통성이 없던 전씨의 5공은 재임기간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의 규명하려는
학생과 재야세력을 안기부와 보안사를 동원해 철저히 탄압했지만 드세지는
여론으로 88년 12월31일 5공청산을 위한 국회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후 백담
사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전씨는 백담사은둔 2년1개월만인 지난 90년 12월30일 연희동자택으로 귀환
했지만 자신의 후계자 노태우씨가 지난달 16일 부정재산축적으로 구속된이후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규명하라는 드세지는 여론에 밀려 3일 안양구교도소
에 전격 구속됨으로써 결국 역사의 단죄를 받게됐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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