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노전대통령 재임중
그 직위를 이용,30대 재벌그룹 총수들로부터 뇌물을 받았음을 적시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수뢰혐의를 상당히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노전대통령이 특정국책사업의 수주대가로 받은 돈외에 성금이나
떡값명목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돈의 대부분을 뇌물로 규정했다는 것을
뜻한다.

즉 검찰이 대통령의 "통치자금"조성자체를 대통령이라는 포괄적 지위를
이용한 뇌물수수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검찰주변에서는 노전대통령이 특혜나 이권과 관련, 돈을 받았을
경우에 한해 뇌물죄를 인정할 것이라는 주장과 최근 법원이 뇌물죄를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추세에 맞춰 성금이나 떡값도 모두 뇌물로 볼것이라는
입장이 맞서 왔으나 검찰은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볼수 있다.

검찰이 이날 청구한 영장내용을 보면 노전대통령은 88년3월부터 92년12월
까지 청와대 집무실등지에서 김우중대우그룹회장과 최원석동아그룹회장등
총 30개기업체 대표 30명으로부터 기업경영에 대한 선처등의 명목으로 총
2천3백58억9천6백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계좌추적을 통해 3천6백억원가량의 비자금을 찾아냈다고
발표했었으나 이 금액은 단순입금금액의 합계일 뿐이어서 중복 처리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검찰이 밝혀낸 실질적인 비자금 총규모는 이들 기업체
회장들의 진술을 통해 얻은 2천3백여억원을 약간 상회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검찰주변의 해석이다.

검찰은 당초 밝혔듯이 영장 내용에는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1~2개만 적시
하고 나머지는 같은 수법으로 행해졌다는 식의 피상적인 기술을 해놓았다.

이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케이스로 대우그룹과 동아그룹이 거론돼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의 경우 91년5월 초순께 청와대내 대통령 집무실에서
90년9월 진해 해군 잠수함기지 건설공사를 (주)대우가 수주할수 있도록
해준데 대한 사례명목으로 50억원을 노전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구체적
사례를 적시했다.

이는 특정 국책사업과 관련된 뇌물임을 단순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것으로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수월하게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서이다.

김회장은 또 각종 금융및 세제면에서 대우그룹측에 혜택을 부여하거나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같은달 중순께 50억원을 노전대통령
에게 건네는등 불과 보름사이에 1백억원의 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돼있다.

이시기는 총선이나 대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때여서 개인적인 축재를 위한
자금마련 차원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회장은 이같은 방법으로 88년3월 하순께부터 91년12월 중순께까지 7차례
에 걸쳐 2백40억원을 노전대통령에게 건넨 것으로 영장에 기재돼 있다.

검찰은 이와함께 최원석동아그룹회장도 사례로 적시했으나 구체적인
혐의사실은 기재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검찰은 또 영장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수뢰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애쓴 흔적을 보였다.

검찰은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밝히기에 앞서 피의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밝히는 항목을 2백자원고지 5장분량의 한문장으로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나열한뒤 이어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위한 대통령의 직무범위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이같은 검찰의 영장 내용외에 영장담당 판사에게 접수된 1천여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에는 각 해당 기업인과 이현우 전경호실장등 지금까지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들의 진술이 첨부됐다.

검찰은 영장의 내용에는 일단 대우와 동아그룹의 범죄사실만 적시하는
선에서 마무리짓고 기소전까지 20일동안의 보강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현재까지는 대우와 동아그룹 외에 뇌물공여혐의로 공식 등장한
기업은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검찰조사를 받은 37개기업 대부분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며 자금조성 과정에 관여했던 이 전경호실장과 금진호의원도
향후 검찰수사를 통해 사법처리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검찰이 노씨에게 전달된 대부분의 자금을 뇌물로 인정한 터여서
나머지 28개 기업 대표들도 모두 형사입건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검찰주변의
분석이다.

한편 검찰은 영장 말미에 노씨를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는 구속의 사유가 증거인멸및 도주의 우려가 있을때에 국한된다는 현행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른 것으로 노씨에 대해 일단 도주의 우려는 없으나
계속 불구속상태로 방치할경우 증거를 인멸할 우려는 있다는 검찰의 시각을
나타낸 것이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