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인 12일 여야정치권은 여권핵심부가 이번주중에는 비자금정국의 해법과
관련한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관측하면서 그 결단의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비자금 파문이 정치권에 대한 사정으로까지 이어지는등 확대될 것인지
국민정서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로 매듭지어질
것인지 아직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야각당은 비자금정국의 해법을 놓고 좁혀질 수 없을 정도의
이견차를 노정하면서 당략에 따른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불신만 증폭시켰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때문에 비자금의혹을 처음 폭로한 민주당만이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월성"
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태의 조기수습에 반대할 뿐 민자 국민회의 자민련등은
내심으로는 적정선에서 이문제를 덮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민자당은 "노태우전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일이 없다"며
비자금과는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상당수의 국민들은 이같은 태도를
"정직하지 못하다"쪽으로 해석하고 있어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적정선에서 봉합을 하자니 대선자금등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한점의혹 없이 밝히자니 그 또한 부담이라는 얘기다.

민자당의 고위당직자들은 노전대통령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지원받지 않았다
는 김대통령의 언급에서 한마디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반응만 보이고
있다.

김대통령이 13일 청남대에서 돌아와 이번주중 일본으로의 출국에 앞서
고위당직자들과 회동을 할 기회가 있는 만큼 그때가서야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릴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다.

여권일각에서는 비록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김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
하고 정경유착을 근원적으로 근절시킬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대통령의 청남대구상도 우리의 경제나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이번 사태를
조기에 매듭지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찾는데
주안점이 두어져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통령의 청남대구상은 그러나 곧바로 구체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체적인 분석이다.

검찰의 수사과정을 좀더 지켜본뒤 최종 단안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기업인의 검찰소환등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 확실하다.

기업인들의 소환조사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이번 주말께 노전대통령의
재소환여부와 그 시기가 결정될 것이다.

또 비자금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20억원을 받았다고 밝힌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와 1백억원계좌 보유의혹을 받고 있는 자민련 김종필총재를
비롯한 일부 정치권인사들에 대해서도 소환조사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문제에 관해서도 이번주중 사직당국의 입장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해 사직당국은 여권핵심부와의 사전 조율을 거친 것으로 전해져
비상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소식통은 이날 "김대통령도 청남대휴가를 통해 노전대통령과
뇌물성 자금을 제공한 일부기업인,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의 수순과 강도등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했을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이소식통은 "전직대통령등에 대한 사법처리는 김대통령이 해외체류중에
단행되는 것이 부담이 적을것"이라고 말해 강택민중국주석의 방한일정이
끝나고 김대통령이 오는 17일 APEC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떠난뒤인
이번 주말께에 노전대통령 재소환등의 조치가 잇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관련, 정치권에서는 비자금사건에 관한한 여권핵심부가 현재로서는
정공법 이외의 선택할 카드는 없다고 보고 김대통령이 사건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내놓을 정치권쇄신방안의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과 내각제로의 개헌등이 공론화될 것으로
점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지각변동의 정계개편이 수반될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박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