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공시절 잘나간다 싶었더니 역시..." "뭐니뭐니해도 권력과는 불가근
불가원이 제일이다"

상당수 기업들이 "6공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런 쑥덕공론은
해당 기업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6공시절 사업을 급속히 확장했던 기업들의 이면에는 권부와의 "당당하지
못한 거래"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지 않느냐는 비아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원"이 지나쳐 "유착"으로 치달았다는 폄하이기도 하다.

벌써 일부 기업들은 그런 "혐의"가 "사실"로 드러났다.

일천한 기업역사나 외형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로 사업의 세를 불려왔던
한보그룹이 대표적 예다.

섬유와 건설을 밑천삼아 "신흥그룹"으로 욱일승천해온 몇몇 기업들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6공시절 원전 주택 토목 고속전철 항공 등 각종 "이권성 사업"을 따냈던
H.D.S 그룹과 "6공 사돈기업"인 S.D그룹 등도 당시 정부와 "밀착"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친밀"했던 덕을 봤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

이같은 일부 그룹들의 "유착 의혹"을 느긋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쪽은
아무래도 "권력 혜택을 별로 받은게 없다"고 "자부"하는 기업들이다.

대표적인 기업은 L그룹.

이 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털어서 먼지나는 곳 없다지만 우리 그룹을
아무리 털어봐라. 거리낄게 별로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80년대 이래 신규사업 진출이 거의 없었던게 그 반증이란 얘기도 했다.

말하자면 L그룹은 "불가근"에 투철했다는 자평이다.

6공시절 사업확장 기세가 꺾였던 H그룹도 권력과의 "불가근"에 충실했음을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이들이 자부하는 "불가근"도 아주 잘한 일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정부가 기업활동과 관련해 엄청난 "규제 파워"를 행사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권력을 멀리했다는 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사업에 소극적이었다"는
역논리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

일부 재계 관측통들은 S그룹을 "불가근"과 "불가원"의 사이를 적절히
활용한 케이스로 꼽기도 한다.

6공시절 "염원"으로 삼았던 각종 신규사업에 진출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이렇다할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다.

그러나 아직은 어느 그룹이 "불가근 불가원"원칙에 충실했는지를 속단할
수는 없다.

검찰의 기업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일부 그룹들이 꼭꼭 숨겨온 "거래"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이래저래 검찰의 수사결과는 재계의 큰 관심사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