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이 27일 국민적 지탄을 받아온 비자금 보유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사면초가의 늪에서 빠져나오기위한 궁여지책으로
해석된다.

비등하고 있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검찰의 수사망을
피할수 없다는 현실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또한 청와대등 여권의 집요한 압박에 대해 "버티기 작전"으로 나왔던
노전대통령이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으로 받여들여진다.

노전대통령은 그간 측근들의 조기사과 건의에도 불구하고 김영삼대통령이
귀국한 뒤로 사과발표를 늦추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전대통령은 그러나 비자금 파문이 부인 김옥숙여사를 비롯한 친.인척
비리로 확대되는등 비열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실낱 같이 기대했던 여권과의
정치적 절충 여지가 물거품이 됐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측근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날 채택된 민자당의 "사법처리 불가피" 결정이 그의 백기투항을
앞당겼던 것으로 풀이된다.

노전대통령은 결국 이같은 요구를 무시하고 계속 버틸 경우 검찰의 소환은
물론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위기의식에 굴복한 셈이다.

노전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발표와 관련, 여권과 사전 협의를 거쳤을까.

이와관련, 정가에서는 노전대통령을 향한 여권의 간접적인 압력은 있었으되
사과문발표 시기및 내용을 사전 조율하지는 않았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노전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 민자당이 "미진한 내용이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여권은 그러나 그간 막후 체널을 통해 더이상 비자금진상 공개와 대국민
사과 발표를 늦출 경우 "노전대통령을 구속할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연희동측에 전달했다.

대국민 사과문 발표 마감시한은 늦어도 김영삼대통령의 귀국 이전이어야
한다는 압력이었다.

특히 노전대통령의 오랜 친구였던 김윤환대표최고위원이 전날 밤 "여야에게
흘러간 대선자금을 낱낱히 공개하라"고 말한 것은 노전대통령을 향한 여권의
최후 통첩으로 해석된다.

노전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대국민사과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회피,
여권과의 벼랑끝 타협여지를 남겨두었다.

재임시 조성한 5천억원중 사용하고 남은 3천3백억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이대해 "노전대통령이 구속등 사법조치를 염두에
두고 김대통령과의 최후 협상을 위해 카드 한 장을 숨겼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귀국, 비자금사건 처리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때 마지막
보호를 요청하겠다는 심산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노전대통령의 의도가 먹혀들어갈지는 미지수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은 "대선자금 공개"입장에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전대통령은 이날 사과발표를 통해 구속등 사법조치를 피하려는 의도를
보였으나 현재 상황으로는 법적조치에서 빠져 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한우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