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일본총리의 망언으로 촉발된 한일간의 과거사공방이 감정싸움
양상으로 번지면서 해결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있다.

특히 최근의 양상은 과거 일측 인사들의 망언이 터져나왔을때 양측 정부가
진화에 나섰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오히려 양측 정부가 최전선에 나서 공방을 펼치고 있고 정치권이 후방에서
지원사격하는 형국을 취하고있다.

더욱이 이번 공방엔 양국정상까지 개입돼 있어 그 어느때보다 감정의 골이
깊게 파여있다.

무라야마총리와 자민당역사검토위원회, 고노외상등의 "망언시리즈"에
대한 한국의 대응강도는 유례없이 강하다.

애초 "유감"표명 수준에 그쳤던 외무부는 파문이 계속되자 강경대응으로
선회했다.

17일 고노외상의 발언을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강하게 반박한 외무부는 18일
"앞으로 일본측에 필요한 모든 외교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유엔특별정상회담 기간중 잡아놨던 한일정상회담도 취소해 버렸다.

국회도 16일 "한일합방 무효결의안"을 채택한데 이어 18일에는 내달초
개최예정이었던 한일의원연맹 정기총회(서울)를 무기연기했다.

심지어 한일기본조약 합의의 주인공인 김종필자민련총재까지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국회대표연설)하고 나설정도다.

이에대해 일본은 일단 겉으로는 수세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에서 망언파문이 일자 일측은 "한일합방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체결
됐다"(노사카관방장관)며 유화적 제스처를 썼으나 한일합방이 유효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사실상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의 공격적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일본은 한일합방의 유효성을 인정해버릴 경우 <>일본의 현대사를 처음부터
다시써야 하는데다 <>전후배상금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있기때문에 한발짝도
물러설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한치의 양보도 허용치 않는 양국의 과거사 해석논쟁은 "해묵은"
주제임에도 불구, 쉽사리 진정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뭣보다 <>한일합방의 유효성에 관해 "예전처럼 그냥 넘어가선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고 <>정치권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를 민감
하게 받아들이고 있기때문이다.

일본 역시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보수.우익화 경향과 함께 올해말께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자민당이 보수층표를 의식, 강경대응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매파의 수장격인 하시모토통산상이 자민당총재가 됨에따라 앞으로
일본의 우익성향은 더욱 뚜렷해 질것으로 예상된다.

한일양국은 뉴욕 정상회담이 무산됨에 따라 11월 오사카 아태경제협력체
(APEC)회의때 한일정상회담을 개최, 최근 빚어진 과거사문제를 논의할 예정
이나 현재로선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