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사에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의 출발을 알리는 6.27지방선거는
선거운동과정과 투표방법등에서 여러 문제점을 남겼다.

특히 지역일꾼을 뽑는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중앙정치의 쟁점들이
그대로 선거판으로 옮겨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번 선거는 전국적인 규모의 선거로는 최초로 개정된 통합선거법하에
치러져 금권과 관권시비가 많이 사라지고 대규모 청중유세가 눈에띄게
줄어드는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의 심화,중앙정치권의 개입,후보자의 난립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출발단계에 선 우리의 지방자치가 건전하게 정착되고 발전될 수 있는
관건은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인데도 선거전이 과열되면서 흑색선전,금품
살포,상호비방등 과거의 악습과 구태가 재연,지방자치선거는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되어버렸다.

이번 선거가 남긴 가장 오점은 지역감정을 다시 부추긴 점이다.

"지역등권론","핫바지론","세대교체론"이 선거전의 전면에 등장했고
후보들의 인물과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출신지와 지역적 연고가 후보들의 평가기준이 돼버렸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지역감정을 심화시켜 민자당
민주당 자민련을 지역정당으로 전락시켰다.

또 이번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대결장으로 전락,지방자치의 의미가
크게 퇘색됐다는 지적이다.

민자당이 주장하는 중앙과 지방의 손발을 맞추기위해 집권당후보를
뽑아야한다는 논리나 민주당과 자민련이 주장하는 "중간평가론"은 지방
자치선거를 후보들간의 대결이 아닌 정당간의 공방전으로 전환시켰다.

특히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정치 재개와 자민련 김종필총재의
충청권을 기반으로한 세확장 그리고 민자당의 "세대 교체론" 등은
이번선거를 지방자치 발전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선거후의 정국주도권을
잡기위한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문제점은 4대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면서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일부 시.도지사선거의 경우 정치권의 쟁점화로 과열,혼탁양상을 보인
반면 기초단체장및 광역.기초의회의원들은 자신의 소신을 알리기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선거운동기간의 대부분을 할애해야했다.

유권자들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대표로 선택해야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선거과정이 낳은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제 선거이후 확대재생산되지나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지역적 이기주의가 득세해 전반적인 국가운영에 치명적인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있다.

특히 중앙정치의 싸움이 과열되는 경우 지역주민들이 정치권의 볼모로
이용되는 상황에 빠질 수도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갓피어난 지방자치는 오히려 국가발전에 장애가
되는 애물단지가 될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주민과 자치단체가 하나가되어 지방자치의 참뜻을
살리는 성숙된 민주주의를 확립해나가는 것뿐이다.

< 김태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