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6.27지방선거"가 끝났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모든 분야가 중앙으로 집중되던 시대가
지나고 본격적인 지방화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내달 1일에는 상당수의 야당출신 인사들도 시도행정의 책임자로
취임하게 된다.

집권자에의해 일방적으로 임명돼 위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관선
시도지사 시대와는 전혀 다른 행정패턴이 선보이게 될 것이다.

잘되건 못되건 모든것을 중앙정치의 탓으로 돌리던 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는 "자주자결"의식이 고양되는등 국민의식의
변화도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도 자방화시대에 걸맞는 변화를 꾀할 것이며 일부에서는 벌써
부터 그러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업가형 지방경영"시대가 열리면서 자치단체내에서는 모든 사업이
자치단위 위주로 기획되고 실행되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질것이
분명하다.

이에따라 중앙과 지방정부간 마찰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시도단위의 지역개발로 인해 국가적 차원의 일관성있는 종합개발계획이
차질을 빚는 사태도 발생할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환경문제등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에,또 지자체 상호간에
불협화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도 크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야는 7월 임시국회에서 법적인
보완장치를 마련할 계획이지만 어느정도의 기간이 지나기전에는 지자제
실시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출범도 하지전에 지역이기주의니 지역할거주의가 심화될것이라는
걱정의 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각부문별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선거후 정치권의 안정과 더불어 이에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자제시대의 본격 개막은 그러나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정치가 선진화의 고비를 맞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적 결정이 몇몇 정치지도자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존 정당의 수뇌부에서 이뤄지는 붕당식 정치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가치"가 분산되면서 특정인 위주의 정당정치시대는 끝난다는
얘기다.

이와함께 정치권은 이번선거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것이
분명하다.

집권여당이 승리하던,김대중 김종필씨의 양김이 주도하는 야권이 승리
하던 우리정치권의 기존의 판도가 깨어지는 지각변동을 경험하게 될 공산
이 커졌다.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수뇌부는 그동안 이번선거가 중앙정치와,
특히 중간평가와는 전혀 관계없는 지방일꾼을 뽑는 선거라고 강변해
왔었다.

반면 양김은 현정부의 국정운영능력과 독선적 스타일에 문제가 있다며
이에대한 국민적인 심판을 내려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국민이 어느쪽에 점수를 주게되든 이는 엄연한 "평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위기다.

여권이 이번선거에 지게되는 경우 김영삼대통령은 사실상 정국주도권을
상당부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에따라 집권당인 민자당내에서는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당내 갈등이
표면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야권이 제기하게될 거국내각구성등의 주장에도 힘겨운 대처를 해야할
것이다.

야권에서는 양김의 정국주도권이 되살아나고 그에따라 "신3김시대"가
개막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야권의 두김씨는 현행 헌법하에서의 대권도전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게
될 것이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하기위해 9개월여 남겨둔 15대총선준비에
마지막 힘을 다하게 될것이다.

양김은 이와함께 만약의 경우를 대비,내각제개헌을 추진하기위한 야권
연합을 도모하는 한편 민자당내의 민정계를 끌어내려는 막후노력을 계속
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이경우 자연스러게 정계개편이 뒤따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야권이 배패하는 경우,즉 민주당이 호남지역에서만 승리
하고 자민련은 충청권 한두지역에서만 간신히 승리하는 경우,양김씨는
지역적 기반이나 당내에서의 위상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여권수뇌부는 자신감을 갖고 빠른 속도로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단행,
내년 4월 총선에서 심판을 받으려 할 것이다.

총선에서 민자당이 승리하는 경우 3김시대는 그야말로 완전히 끝나게
된다.

어쨋든 선거후의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돼 국가발전에 마이너스가
된다면 지자제 실시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정치의 질적변화를 위한 정치권 스스로의 노력이 긴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