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급작스레 쌀수송 연기를요청한 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나진항의 하역능력 부비를 연기요청의 주된 이유로
들고 있다.

정부도 "인수상의 기술적 요인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뭣보다 나진항의 하역시설은 국내 어느 항구 못지않게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나진항의 하역능력은 3천t급 선박 4척이 동시에 접안할수 있을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장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구실이 못된다.

나진항에는 총 20ha이상의 창고면적이 확보돼 있다.

이밖에 5~15t급 크레인도 17대에 달해 1차분 2천t의 쌀을 받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수송연기 요청의 진짜 속사정은 무엇일까.

현재로선 북경 실무회담의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북경에서 진행중인 박용도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과 북한 삼천리총회사 김봉익사장간의 실무회담이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담에서 북측은 <>출항시기 <>영해이용문제 <>쌀의 품질등 10여가지
사항에서 우리측과 심한 의견대립을 하고 있다는 것.

이 소식통은 양측이견으로 인해 지원합의서에 서명을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1차분 출항이 늦춰졌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출항시기와 관련, 우리측에 출항5일전에 통보해 줄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측 출항이 연기된 것도 바로 이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리정부로서는 실무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출항통보를 할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24일로 예정됐던 1차분 출항도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수송선박의 영해이용은 "절대불가"며 공해를 이용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해를 이용할 경우 수송과정이 다소 길어져 일본쌀을 먼저 받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북측영해도 우리 영해로 간주해 왔기 때문에 영해로 가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국제법상 인정받기가 쉽지않아 북측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같은 북측주장으로 북경실무회담은 난항을 겪고 있으며 현재로선
서명여부가 불투명하다는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를 반영하듯 KOTRA 박사장은 24일 한때 대한항공 북경발 서울행 비행기를
예약, 회담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지는 등의 소동을 빚기도 했다.

박사장은 나중에 이를 취소, 예정대로 25일 귀국편을 다시 예약했다.

그러나 북한의 수송유보 요청은 실무회담 결과와는 무관한 다른 이유 때문
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이 "북주민에 대한 정보차단"설이다.

우리측 출항시기가 예상외로 빨라 인부동원등 하역준비가 미흡했을 가능성
도 완전 배제할 순 없지만 그보다는 하역인부를 정치보위부 요원으로 대체
하고 일부 하역인부의 성분조사를 위해선 상당기일이 소요된다는 것.

이와 관련, 지난 92년 남한쌀이 직교역형태로 들어갔을때 처럼 접안시키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서 선박을 이용, 하역시키기 위한 시간벌기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밖에 "남한집권당의 지자제선거 이용저지"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남한의 정부여당이 쌀지원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수 없도록 선거날인
27일 전에는 출항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정치일정을 꿰뚫어 보고 있는 북한으로선 충분히 가능하다는
관측들이다.

어찌됐든 1차 출항은 KOTRA와 삼천리총회사간의 실무접촉 결과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1일의 이석채-전금철간 합의문에는 "서명후 10일 이내에 첫선박을
출항시킨다"고 돼있어 늦어도 7월1일까지는 출항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긴
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서명"이 당국간합의 때의 서명을 뜻하는 것인지
실무자합의때의 서명인지 불확실해 이래저래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