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요즘 통상당국은 조그만 고민에 빠져 있다.

그 씨앗은 다름아닌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

얼마전 EAEC는 오는 4월27~29일간 태국푸켓에서 열리는 비공식통상각료
회담에 한국을 초청한다는 전문을 보냈는데 우리정부는 좀처럼 참석여부에
대한 회신을 못하고 있다.

초청전문을 받은 사람은 박재윤통상산업부장관.

"전문을 받긴 했지만 상황을 봐가며 참가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통상산업부 관계자의 말이다.

외무부쪽은 아예 전문이 온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설사 통산부쪽에 전문이 왔다해도 우리와 협의를 거쳐야 하고, 협의를
거쳐야 할 곳이 ''또한군데'' 있다"(외무부관계자).

이처럼 정부당국의 대응이 지지부진한 것은 바로 이 "또한군데", 즉 미국
때문이다.

EAEC는 지난 90년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수상이 주창, 93년 동남아국가연합
(아세안) 6개국을 주축으로 출발한 협의체.

그러나 출범초기부터 미국의 제동으로 "삐걱"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은 "서방국(특히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국가끼리 배타적인 협력체를
구성하는 것엔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도 그동안 미국측 입장에 동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마하티르수상은 "APEC이 역내국의 공동이익보다는 일부강대국의
이익에 놀아날 가능성이 높다"며 동아시아국가들만의 경제공동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국 일본 중국등 극동3국을 끌어들여 기정사실화시켜
보자는게 EAEC의 계산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주최측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및 중국쪽에도 참가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미국의 입장과 일본의 참석여부, 그리고 아세안시장의
중요성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제까진 적당히 "불가근 불가원" 정책으로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미국이나
아세안이 한국의 명확한 입장표명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참석여부와 함께 정부의 대EAEC정책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 김정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