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대북경협 활동이 사실상 정지상태에 빠진 가운데 정부가 언제쯤
경협에 대한 ''규제의 끈''을 풀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과의 경협이 사실상 중단되고 있는 것은 통일원이 기업들의 각종 대북
경협활동 신청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통일원이 기업들의 방북신청이나 연락사무소 개설신청 등을 받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다만 신청을 하기전에 통일원과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신청을 ''제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행정지도인 셈이다.

지난 1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모그룹은 4월까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해 최근 사무소개설신청을 내려했지만 보기좋게 "퇴짜"를
맞았다.

"당분간 내지말아 달라"는 요청과 함께.

어떤 기업은 북한과의 후속협의를 위해 2차 방북신청을 하려했으나 혹시나
해서 다른 회사 북한담당자에게 "분위기"를 타진한 후 제출을 포기했다고
한다.

기업인들은 "대북경협 활성화조치(작년11월)가 취해진 지 불과 석달 밖에
안됐는데 이제 또 규제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대북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모그룹상무는 "통일원의 행정지도가 뭐 어제
오늘의 일인가. 이젠 타성이 돼버려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통일원이 기업들에 경협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데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달 일부 방북기업들이 북한방문을 추진하면서 거액의 뒷돈을 북한
당국자에게 건네줬다는 소문이 나돌자 통일원은 이제까지의 전향적인 자세
에서 "당분간 일체의 경협중지"쪽으로 돌연 선회해 버렸다.

김영삼대통령이 "뒷거래"얘기를 듣고는 크게 화를 냈다는 후문이고 보면
통일원의 이같은 조치는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정부당국을 얼어붙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로 꼽힌다.

D그룹의 모임원은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사실 경협이
아쉬운 쪽은 북한이기 때문에 정부는 당분간 경협을 묶어둠으로써 북측이
자연스레 한국형을 선택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겠다는 전략인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S그룹의 한 북한전문가는 "작년말 대북경협활성화 조치가 발표됐을 때
정부는 경제협력을 핵문제와 연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드러내 놓고 핵과 연계하겠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통일원의 창구
지도는 경수로문제와 경협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버린 정부의 고육책"이라고
지적한다.

이와함께 "당국간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을 안달나게 만드는 작전"(L그룹임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정부로 하여금 경협추진에 제동을 걸게 한 요소가 뭣이 됐든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이제 그만 풀어줄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일부기업의 "뇌물공여설"만 해도 물증확보가 어려워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다 경수로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한국형"이라는 명칭문제를 제외하고는 다소 유연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
이다.

이같은 상황변화외에도 "남북간의 경제협력을 반드시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가의 문제도 한번쯤 논의를 시작할때"라는 의견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처럼 경협의 이니셔티브를 민간쪽에 과감히 이양하라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기업들의 경협활동은 "국익"이란
채로 한번은 걸러질 필요가 있다.

또 기업간의 선점홍보전이나 과당경쟁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걸핏하면 "행정지도"라는 수단을 동원, 혼선을 일으키는 일은 행정
의 투명성 측면에서나 정책의 일관성 차원에서 이제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
이다.

결국 언제쯤 대북경협이 해금될 지는 "남북경협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일성을 밝힌 나웅배신임통일부총리가 "진짜 활성화"를
바라는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어느정도 귀를 기울이느냐에 달려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3월초에 발족되고 북한이 4월15일까지
KEDO와 경수로공급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만큼 이번 봄안에 풀리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 김정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