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선 < 서울대 교수 >

정부의 행정조직개편안 발표이래 여기저기서 갖가지 제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번에 직격탄을 피한 비경제부처도 당연히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축소일변도의 조직개편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금년안에 조직개편을 마무리하려고 서두르고 있지만 야당은
정부의 졸속을 비판하면서 재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행정조직에 손을 대는 일은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를 여는것
만큼이나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조직개편을 우리행정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할수 있는 고단위 처방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직을 축소하면 "작은 정부"가 당연히 실현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작은 정부"는 결코 정부조직이나 인력 그리고 예산이
작은 정부가 아니다.

혁명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번의 행정조직개편으로 7백~8백명의 공무원이
감원되고 2백억~3백억원의 예산이 절감되리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작은 정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인가.

공직사회의 동요와 사기침체, 행정마비로 빚어지고 있는 엄청난 손실과
혼잡비용은 이것의 몇배에 달할 것이다.

이런 정도 목표라면 세도비리만 바로잡아도 쉽게 달성될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작은 정부"는 결코 크기가 작은 정부가 아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는 정부, 공직사회가 기강을 세우고
법질서를 엄정하게 유지하는 정직하고 강한 정부, 쓸데없이 국민생활과
기업활동에 간섭하거나 규제만을 일삼지 않는 정부, 권위주의적으로 국민과
기업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에 봉사하는 정부, 행정편의가
아니라 민간의 편익을 우선하는 정부, 중앙집권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지방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신장시키는 정부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작은 정부"의
참모습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조직개편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이번의 조직개편작업이 가까운 장래에 또다시 도마위에 올려지는
불상사가 없도록 신중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우선 정부는 축소일변도의 조직개편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젠가 완화해야만 할 경제적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 민영화및
민간위탁이 가능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직들은 이 기회에 과감하게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관계된 사회적 규제 영역에서는 중앙과
지방에 적절하게 조직과 인력을 증강함으로써 규제가 합리적인 방법으로
실효성있게 이루어질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행정을 기능주의적으로 파악하는 단순논리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유사기능이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거나 중복되어 있는 것을 문제로만
볼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이없는 정책실패를 예방하는 최선의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부처의 통폐합이 행정기능과 업무의 효율화를 당연히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지위의 격상이 곧바로 국가정책상 우선순위나 자원배분면에서의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조직을 고친다고 공무원의 의식과 행태가 당연히 바뀌는 것이 아닌 이상
정책결정과정과 행정절차를 투명하게 만들어 비민주적 행정관행과 부정부패
가 일소될수 있게하고 공직사회에 경쟁원리를 주입시키는 일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