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은 박정희대통령이 지난 61년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뒤
두달뒤인 7월22일에 생겼다.

당시 경제개발을 국가시책의 최우선과제로 삼으면서 경제정책조정에 관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기관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난 90년 통일문제를 담당하는 부총리가 생기지 전까지 경제기획원장관이
유일한 부총리이기도 했다.


이기관이 탄생 33년만에 공중분해됐다.

기획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인 예산실은 재정경제원으로 흡수되고
국무총리행정조정실의 정책조정기능이 강화됨으로써 기획원의 실체는
없어지는 꼴이 됐다.

탄생당시 기획원은 4국 19개과(2백28명)에 불과했다.

옛 부흥부를 전신으로 건설부의 종합계획국 물동계회국, 내무부통계국과
재무부에산국을 흡수해 설립됐다.

지금은 2실 5국, 담당관과를 포함해 38개과(공정거래위원회포함 8백32명)로
늘어났다.

통계청까지 합하면 총직원은 2천명이 넘는 대군단인 셈이다.

경제기획원의 33년사는 곧바로 한국경제의 발자취나 다름없다.

기획원이 탄생한 직후인 62년의 한국 1인당 국민총생산(GNP)는 87달러에서
지난93년 7천4백66달러로 89배로 확대됐다.

한국경제가 빈곤의 터널에서 벗어나온 계기가 된 경제개발5개년계획도
경제기획원주도로 이뤄졌다.

62년 1차5개년계획을 시작으로 91년에 끝난 6차5개년계획까지 30년간의
경제성장을 주도해 나갔다.

한국경제를 세계10대교역국으로 올려놓은 밑거름도 기획원이 깔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에 대한 경제교육부터 실질적인 경제발전까지 길고 긴 한국경제발전의
원동력역할을 해온 것이다.

지금도 경제의 종합기획 물가산업조정 부동산 노사문제 대외통상및 나라
살림인 예산의 편성에 이르기까지 경제운영전반에 걸쳐 기획원이 손을 대지
않는 분야가 없다.

그러나 기획원은 양적성장위주의 경제가 질적성장과 구조개편쪽으로 궤도가
달라지면서 위상및 기능재정립의 요구를 받게 된다.

6공들어서면서 경제의 민주화및 자율화가 강조되고 국제화 개방화라는
대외물결이 몰아치면서 기획원기능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개발연대의 성장드라이브를 앞장서서 이끌어온 역할의 재조정이 거론되면서
기획원의 존재의의에 대한 찬반양론이 여론화됐다.

그때부터 정책조정과정의 갈등이 재연되고 과거 기획원의 성장정책의
수혜집단이라고 할수있는 대기업까지도 기획원의 정책방향에 반발하기도
했다.

게다가 개발연대처럼 거시경제방향을 제시해 경제주체들의 공감대를 얻어
내지도 못하고 각종 현안에 대해 대증처방만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지난 88년이후 정부일각에서 기획원을 기획청으로
격하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일기도 했다.

기획원의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이같은 분위기는 김영삼정부들어, 특히
최근에 세계화물결이 몰아치면서 절정에 달하면서 결국 와해의 길로
들어섰다.

과거의 영광에 비해 초라한 모습으로 "창조적 파괴"의 길을 밟게 된
기획원은 최근의 위상약화를 반영, 엘리트경제관료들이 선택을 꺼려하는
곳이 되기도 했다.

33년 기획원을 이끌어온 부총리는 현재의 홍재형장관을 포함해 모두 26명
이다.

경제문제 못지않게 정치권에 문제가 있을 때도 부총리가 "희생양"으로
선택돼 경질되곤 해 부총리의 평균재임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개발의 역군이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부총리의 역할은 당시의 경제상황과 주변 장관들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장기영(8대), 김학렬(10대), 남덕우(12대)부총리등 비교적 강한 힘을
행사해온 실세장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부총리는 경제정책조정권을 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의
역학관계상 소신을 펴지 못하고 "좌고우면"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로인해 경제정책의 깃발이 양쪽에서 나부껴 기업과 국민들에게 혼선과
혼란만을 안겨준 적도 있었다.

세계화바람이 회오리처럼 몰아치면서 경제기획원의 위상재정립이 강하게
요구될때도 경제기획원안에서는 "국민경제의 균형발전과 부처할거주의의
합리적조정자"로서 반드시 필요한 기구라며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몸부림쳐
왔다.

조직개편설이 나돌아도 애써 모르는 척 하기도 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앞에 이들의 생존요구는 외면당했다.

개발연대 경제성장의견인차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고광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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