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협상의 타결로 중단됐던 남북경협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동안 경협의 최대걸림돌로 작용해왔던 핵고리가 풀림에 따라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북.미회담결과 북한이 일체의 핵활동을 중단하고 남북대화를 재개
하겠다고 명시한 것은 완전한 "핵타결"을 의미한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고수해왔던 "핵문제의 해결없이는 남북경협은
없다"는 원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뜻한다.

핵타결을 전제로 물밑에서 다각적인 남북경협방안을 검토해왔던 정부가
북미회담의 타결을 계기로 획기적인 대책을 강구중인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남북경협의 물꼬를 어떻게 교통정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핵문제가 완전히 타결된다고 전제할 경우 남북경협은 과거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을때 남북경협이 막연한 기대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경수로 건설이란 가시적인 시범사업이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

경수로 건설사업이 미국과 북한간의 계약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한국형
으로 건설키로 내막적으로 합의돼 있어 사실상 남북간 시범사업이 될수
밖에 없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북미회담의 타결을 계기로 그동안 중단됐던 기업인의 방북이 우선적
으로 허용되고 주춤했던 위탁가공무역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핵문제에 돌파구가 마련되면 기업인 방북등 국내규제를 먼저 풀고 나서
남북경협의 제도와 법을 정비하겠다는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컨대 시범적인 투자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직교역에 문제가 없도록
청산계정을 설치하는 방안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투자보장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등 대북투자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는 작업도 구체화한다는게 정부의 복안이다.

이렇게 될 경우 기업인들이 당장 교역과 투자를 확대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볼수 있다.

남북경협에 따르는 제도와 법의 정비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남북당국간
에 대화의 채널을 확보하는게 급선무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92년 9월 경제교류협력분야등 4개분야에서 채택된 부속합의서에서
개최하기로 한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정상적인 대화창구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협을 위한 대화는 보다 급진전될수도 있다.

북미간에 연락사무소 설치가 합의된 상황에서 남북경제대표부를 설치
하는 방안을 검토할수도 있다는 다소 성급한 기대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남북정상회담등 돌출변수에 의해 남북간 대화가
급진전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북한이 한국기업들에게 적극적인 투자유치의 손짓을 보내고있다는
점에서도 남북경협이 가속화할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을 낳고 있다.

북한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나진.선봉지구에 대한 개발권을 한국기업에
사실상 팔아 넘긴 것도 이런 사정을 엿보게 한다.

남북경협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태도가 예전보다 느긋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고조돼
있다고 할수 있다. 남북경협에 대한 기업들의 과열경쟁이 우려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지나친 과열경쟁을 방지하기위해서 남북경협조직과 전략을 재정비하는
게 시급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낙관은
금물이라는 얘기다.

< 박영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