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27일),김영삼대통령과 김종필민자당대표의 청와대 주례회동.

당3역과 정무1장관도 배석한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기업들의 촉각이 쏠려있는 특별한 지시를 하나 내렸다.

재계의 강력한 반발속에 현재 경제기획원이 추진중인 "대규모기업집단의
총액출자한도 축소조정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관철토록 하라는 지시였다.

김대통령의 이 지시는 물론 단순히 현안과제에대한 국정최고책임자의
관심표명으로 이해될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매우 단호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개혁과 경제정의 실천을 위해 꼭 필요한 법" "이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운 일이 생긴다" "잘못하면 큰 오해를
살 여지도 있다"는 등의 표현에서 김대통령의 기업에대한 심기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을 앞당겨 말하자면 한동안 유지됐던 청와대와 대기업간의 밀월
관계에 요즘 미세한 균열조짐이 보이는것 같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부
정책들에 대해 기업들의 반발이 최근 표면화되며 감지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교통부의 항공노선 배분과정에서 보여준 한진그룹의 반발은
청와대사람들을 섭섭하게한 대표적 사례다.

현대중공업 노사분규과정에서 불거진 견해차도 마찬가지다. 여기다
중형항공기 주간사 업체선정, 석유화학 정책수립, 한양의 합리화업체
지정과정등에서도 관련기업들이 정부에대해 종래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는 소문이다.

특히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는 재계가 총체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사안이다. 현재 순자산의 40%로 되어있는 30대그룹의 총액출자한도를
25%로 낮추는것을 골자로한 이 개정안에대해 대기업들은 "기업현실을
도외시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대기업을 대변해 전경련이 총대를 메고
"점진적 한도 축소"를 정부측에 요구하고 있다.

기업이 정부의 정책에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는 물론 과거에도
흔히 있어온 일이다. 또 그것 자체로서 아무런 문제가 될 성질이 아니다.

그럼에도 문민정부의 청와대가 최근 일련의 기업움직임을 심각하게
보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한꺼번에 이런현상이 나타나
자칫 정부의 권위에 대한 조직적인 도전처럼 비쳐질수 있다는 점이다.

시기적으로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며 나타나는 권력 누수현상이란 일부
여론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이와관련 청와대내에서는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대기업에대한 새로운
시각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한 비서관은 "대기업에게 문민정부가곧 문약한정부로 인식되어서는 곤란
하다"고 주장 했다. 또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비록 사석에서였지만
"기업들은 믿을수 없다"고 말해 문민정부초기의 냉냉했던 관계를 다시
생각나게 했다.

청와대가 최근의 기업행태에 섭섭한 마음을 갖는 것은 대충 다음
몇가지에 근거하는 것 같다.

"우선 문민정부는 정치자금을 받지않는다. 따라서 뒷거래가 없는 공정한
정책결정을 하고있다. 여기다 기업들을 위한 경제행정규제완화에 할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

청와대는 그럼에도 불구 기업들의 정부정책에 대한 반발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문민정부의 유연성과 합리성을 "나약성"으로 잘못 판단한 결과로
보고있다.

기업의 오판을 불식시키는 "강경책"이 극히 일부에서나마 거론되는 것도
그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기업의 반발을 사게끔한 원인을 정부측에서 제공했다는
자성론도 없지 않다. 행정의 미숙이나 합의도출을 위한 지나친 공개행정
등이 정부를 만만하게 보도록 한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를 "요즘 관료들이 기업과의 접촉을
지나치게 꺼리는데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수 있다"고 분석했다.

관료가 기업의 속사정을 깊이 알거나 기업인들과 친분관계를 쌓고있으면
정부가 설혹 불만을 살정책을 시행한다해도 이를 설득할수 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후 관료들은 기업과의 접촉을 맹목적으로 기피
함으로써 오히려 오해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청와대의 대기업 정책이 당장 "강공"으로 바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제2의 기업사정에대한 소문이 그럴싸하게 나돌았지만
관련비서실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도 않는다.

경제비서실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인 힘으로 기업을 콘트롤하는 것은
문민정부의 방식이 아니라는 답변이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최근의 "돌출 사안"들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
버리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기업이 안고있는 고질적인 문제점들의 개혁을 위해서는 원칙과 법으로
풀어갈수밖에 없다"는 한 청와대관계자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여러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는것 같다.

"공정거래법 개정"과 관련한 김대통령의 27일 지시도 바로 이관계자의
말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경우든 정부와 기업의 감정대립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원칙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선진미래를 지향하는 가장 충실한 맹방이요
동반자다. "오해를 푸는일이나 단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은
사사로운 친구관계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김기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