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살펴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한꺼번에 집중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거 어느 한시대에 유지되었던 국제관계가 외부적 환경의 변화
때문에 더이상 지속하기 힘들어져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전환기일때가
많다.

그동안 북한의 핵위기로 대변되는 남북한, 미북한간의 우여곡절도 과거의
냉전적 대결관계를 새로운 탈냉전적 협력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몸부림
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색의 과정에서 북한의 경제문제와 핵문제라는 난제에
더하여 우리는 또하나의 문제, 즉 김일성주석의 사망에 뒤따르는 북한내부의
권력승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 핵 권력승계의 난제가 중첩되고 있다는 점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작년 북한의 NPT탈퇴위협으로 조성된 대결국면은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북한방문으로 해소되는듯 했다.

그리고 바로 며칠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문제와 경제문제는 상호연계하에
국제적인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것이 남.북한, 미국간에
합의된듯 보였다.

그러나 북한의 권력승계문제는 새로운 불안정국면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북한 권력승계문제는 핵 경제문제와는 달리 국제적인 협상으로 해결될수
있는것이 아닐뿐더러 그자체가 핵문제와 경제문제 해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예를들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예측해왔듯이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한다고
가정해 보자.

첫째 어떠한 과정을 거쳐 권력을 승계하느냐가 문제이다.

과연 반김정일 세력과의 권력투쟁은 일어날 것인가.

일어난다면 어느정도의 치열한 투쟁과정일 것인가.

둘째 어느정도의 시간이 새로운 권력구도가 정착되는데 걸릴 것인가.

이 두가지 문제는 직접적으로 핵위기 해소를 위한 국제적 협상에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상대측 협상 파트너에 대한 신뢰도이다.

상대국 정상의 사망으로 내부적 권력체계가 확립되지 않으면 협상에 임하는
상대측에 대한 신뢰도가 약화되고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이는 그동안 연계되어 해결을 시도해왔던 핵.경제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진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핵문제의 경우 지난번 북한이 일방적으로 뽑아낸 연료봉의 냉각기가
몇주후에 끝나기 때문에 그 이전에 타협을 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경제의 문제도 최근 마카오의 위폐사건등이 보여주듯 시급한 상황인
것 같다.

북한의 군력체계가 치열한 투쟁과정을 거쳐 오랜 시일에 걸쳐 정착되는
경우 자연히 경제문제와 핵문제는 미해결상태로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되면 이 두가지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걷잡을수 없는 또다른 사태를
유발할지도 모른다.

김정일이 아닌 제3의 세력이 권력을 승계하게 되는 경우에도 상당기간동안
치열한 권력투쟁을 거쳐야 할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또한 김정일이 권력승계 위기를 투쟁없이 그리고 빠른시일내에 극복하게
된다 하더라도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위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들어 그동안 남한이나 미국에 대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전략은
대단히 일사분란했고 어느정도 예측가능했다.

그러나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이 모든 대외협상과 전략의 총책임을 맡게되는
경우 그가 김일성처럼 예측가능한 전략을 구사할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만약 경험의 미숙, 판단착오, 정보교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북한이 협상
상대와 타협해야 될 시점에서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남.북한, 미국간의
협상의 구조는 매우 불안정해지고 우리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결
국면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일어날수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북한내부의
상황변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국제적인 협조체제의 유치를 통한 정부수준
의 적절한 대응책들의 마련을 통해 극복해 나갈수밖에 없다.

특히 협상과 관련하여서는 남북한간의 정보유통의 불확실성 문제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북한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서 극도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정부당국자, 특히 안보담당정책결정자들의 언행을 통해 불필요하고 오해
가능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대화의 채널을 가능한한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우리측이 문제를 대결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표명하여야 할 것이다.

이로써 어렵게 조성된 남북한간 대화의 분위기가 상호간의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때문에 대결과 위기국면으로 다시 반전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전반적인 경제위기와 이에서 파생되는
정치적 어려움은 그동안 북한이 추구해 왔던 노선의 수정과 개혁조치를
통해서만이 해결될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핵문제의 투명성 보장만이 남한및 국제사회가 북한의 문제해결을 돕게
하는 필수조건이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정부의 위기관리능력과 기동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러가지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에대한 대비책을 수립하여
점검해 두어야 할 것이다.

북한내부의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 내부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안심하며 생업에 종사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정부는 바로 위기관리 능력및 대응태세를 말만이 아닌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