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 중앙대교수/동북아연구소장 >


전후 반세기동안 한반도의 절반을 지배하던 김일성주석의 사망은 사적
은원과 공적 공과를 떠나 새삼 인생의 무상함을 깨우쳐 준다.

그 죽음의 원인마저 불분명한 마당에 김일성 사후의 남북한 관계 또는
동북아정세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북한은 이른바 "수령님"의 나라였고 따라서 그의 죽음은
일파만파의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6.25도 그가 일으켰고, 북핵긴장도 그로부터 비롯됐으며, 남북정상회담
이라는 돌파구도 그로인해 뚫리는 듯 하였다.

따라서 정상적인 자연사를 가정할 경우 한때 고조되었던 한반도의 해빙
분위기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인생의 안간힘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북한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외교적 어려움을 생전에
자신이 결자해지하려 나섰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해석일까.

이 가정의 신빙성 여부를 떠나 북한의 현실인즉 차마 인간적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비참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북한체제가 유지돼온 것은 어설픈 민초들이 50년을
바쳐 숭배해온 신격체, 어버이 수령님의 존재 때문이었다.

누구든 자기인생의 잘잘못을 떠나 이제까지 믿고 살아온 존재를 쉽게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을 어느 누구도 김주석과 같은 신앙적 카리스마는 없다.

김주석의 언행이 옳든 그르든 자신들의 인생 전부를 바쳐 떠받들어온
신앙의 대상이기에 인고할수 있었으나 이제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대신하지
못한다.

이같은 추론은 "포스트 김일성"체제가 선택할 정책수단이 그리 많지
않음을 뜻한다.

일단 민생을 안정시키고 점진적으로 민권 민주를 확대해 나가는 길 뿐이다.

그것은 중국식 변화를 뜻한다.

김일성 생전에 이미 북한은 지역적으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점진적인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서기 시작했었다.

나진.선봉의 경제특구화, 청진항구의 개방, 금강산의 국제관광단지화계획
등이 그러하다.

법제면에 있어서도 늦게나마 중국의 그것에 못지않은 새로운 대외개방지향
의 경제관계법률들을 잇달아 제정, 공포하였다.

만약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된다면 그를 둘러싼 인맥의 구성으로 볼때
테크노크라트중심의 신체제는 일단 정권이 안정되는대로 개혁, 개방정책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국제 정치 경제질서나 급속히 해동되고 있는
동북아정치 경제 환경에 비추어 볼때 북한의 신정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정치는 틀어쥐고 경제는 풀어놓는, 선경제 후민주화의 중국식개혁은 새
체제의 출범에 임해 이제까지 인종의 한계에서 허덕여온 2천5백만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붙들어 잡는 유일한 선택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는 민족적 인도적 관점에서 의연해야 한다.

먼저 김일성주석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
계속적인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의 "남북한 기본합의 정신"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조문특사의 파견의사를 비공식으로 타진할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새 정권의 등장을 축하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 북한 정권이 정당성과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해 또는 인민들
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무슨 돌발적인 충돌을 일으킬지 모르는 사태
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

그리고 새 북한 정권이 대외개방 대내개혁의 길로 원활히 진입할수 있도록
조건없는 경제교류협력을, 꼭 드러낼 필요가 없이, 단행해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50년간 남북간에 쌓여진 불신의 장벽을 허무는 유일한 방법
이며 절호의 기회이다.

인간세상사도 그렇지만, 민족문제 역시 한쪽이 불행에 빠져 있을때 다른
한쪽의 참 우정을 확인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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