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석 부총리가 경제팀장의 지휘봉을 잡은지 한달이 지났다.

불과 한달만에 어디가 달라져 있는지를 재 보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그가 과천 관가에 새바람을 일으킨 건 분명하다. "기행"으로 볼 수
있는 남다른 스타일이 눈에 띠기도 했지만 14년만에 관료사회에 복귀한
장관답지않게 경제팀을 삽시간에 장악한 그의 리더십때문에 더더욱
돗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우선 생각과 행동이 따로 움직인다는 지적이
있다. 생각은 7공식으로 앞서가고 있으나 일처리는 3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들이다. 아직 감을 잡지 못해 실무를 챙기지 못했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론 그의 한달간의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사실 지난 한달간 정부총리의 행적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기존의
상식을 깨는 파격으로 일관했다. 과천 사람들의 상당수가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매주 과장 사무관들과 서서 하는 회의를 갖는가 하면 기획원의 1급
두자리를 비워두어 어안이 없게 했다. 경제장관회의가 생긴이래 처음으로
경제장관회의를 부처를 돌아다니면서 개최토록 한 것도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런 류의 변화로 그는 "과거와는 다르다"는 이미지를
심었다. "차별화"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여기에다 무우 자르듯 명쾌한 답변으로 "소신"장관이란 평도 들었다.
과거엔 말도 못꺼냈던 가격현실화의 필요성을 취임일성으로 제기한게
그사례다. 행정규제 완화를 위해 관리들과 싸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펼치기도 했다. "그동안 기업들과 싸운게 아니라 내부하와
참모들과의 싸움이었다"는 독일 에르하르트 수상의 말을 빌려 "탈규제"를
이루겠다고 강조한 대목이다.

그를 기대하는 것은 이런 행적들이 단순히 기이해서가 아니다.
통치권자의 신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부터
"경제팀을 장악하라"는 주문을 받았을 뿐 아니라 취임 40일전에 이미
부총리 임명을 통보받고 나름대로 철저한 "시나리오"를 짰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그동안 외부인사들과 만나 기획원에 대한 평가를 끝냈으며
심지어 과장 국장급에 대한 인사채점표까지 만들어 놨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여기에다 1급 두자리를 줄인다고 밝히고 2-3개월후에 결론을 내겠다고 해
관리들이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해 놓았다. 이 역시 기획원 내부를 장악하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대학에서 "전략론"을 강의한 교수출신
다운 관리방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총리의 관리방식이 과연 효율적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검정색 옷만 입지말고 콤비나 핑크색 와이셔츠도 입으라"면서
강조했던 자유롭고 개방된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장 사무관과의 대화에서도 부총리만 자유롭다고들 한다. 불같은 성미에
언제 무슨 말이 터질지 모르니 마음이 편할 턱이 없다.

더군다나 업무와 관련해 과장이나 사무관이 부총리에게 말할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주된 업무는 차관이 주로 챙기는 탓이다.
"부총리"만 맡고 "경제기획원 장관"은 의도적으로 맡지 않는다는 말이다.
실제로 취임이후 공식적인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고 그결과 업무공백이
빚어지고 있다는 말이 기획원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가격현실화 발언 파문이다. 가격현실화의 당위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유독 그는 밀어부칠 것 처럼 강조했다. 그
결과는 정부총리의 스타일만 구기고 말았다. 기획원 직원들은 부총리가
올해 물가관리여건을 사전에 브리핑만 받았더라도 "통치지표"나 다름없는
물가지수를 일반경제지표와 같이 취급하는 "실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무부나 상공자원부등 다른 경제부처에서 정부총리의 행보에 우려를
느끼고있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상아탑에서 지낸 14년간의 공백이
여과되지 않은채 정책방향으로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일부에선 혹시나매사를 3공식으로 밀어부치지나 않을 지를 걱정하기도
한다. "부총리가 좀 신중해져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힘"있는 부총리에 마음 든든해 하면서도 "말하기 보다 듣기에 좀더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요즘들어 과천에서 부쩍 잦아진 걸 부총리가
전해듣고있는지 모르겠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