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취임직후 올 경제운영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지시를 내렸던
정재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약 2주간 전임 이경식부총리 시절
작성한 시안을 직접 수정해 실무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후문.

수정작업을 거쳐 최종 확정된 94년 경제운영계획은 수정전 보다 분량이
절반으로 줄고 핵심적인 내용 위주로 바뀐게 특징이다. 예컨대 1차시안이
성장 잠재력 강화 국제화등 추상적인 제목에 따라 나열된 반면 수정안은
농어촌대책 민간기업 활성화 국제화 등 이슈별로 5대시책과제를 일목요연
하게 제시했다는게 실무자들의 자체평가.

특히 수정안은 5대시책 과제중 농어촌대책을 첫번째 과제로 선택했는데
경제운영계획에 농촌문제가 첫머리에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장관회의에서 농어촌대책이 제1과제로 채택되자 김양배 농림수산부
장관은 정부총리에게 감사를 표시했다고. 정부총리가 농어촌대책을 중시한
것은 김대통령에게 농어촌대책에 대해 특별히 대책을 마련하도록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과거 박정희대통령에게 보고를 잘해 "브리핑의 귀재"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였던 정부총리는 이번에도 과거 실력을 살려 어휘 선택까지 직접 챙길
만큼 의욕을 과시했다.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과장이나 사무관이 알아서
할 사소한 일마저도 간섭을 한 것이 "옥의 티"였다는 반응.

<>.기획원은 올 경제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성장 물가 국제
수지등 정부의 공식적인 거시경제목표치나 전망치를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연말에 목표미달이라는 비판을 회피하려는 포석인듯.

지난 7일 경제운영계획을 논의하기위해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도 이
문제가논의되 장관들간에 찬반양론이 분분했었다. 일부 장관들은 정부가
종래 매년 전망 형식으로 거시지표를 발표했고 또 기업들이 이를 토대로
경영계획을 세웠다는 점을 들어 올해도 거시지표를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

결국 정부의 공식적인 전망치를 밝히지는 않되 한국개발연구원(KDI)한은
민간연구소등의 전망치를 종합한 지표를 제시하는 쪽으로 타협이 이루어
졌으나 민간경제계는 이를 보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는 반응이다.

결국 기획원은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연말에
호된비판을 피하기 위해 거시지표를 공표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연구소들의 물가전망치도 6%수준으로 신경제5개년계획
에서 제시된4.3%보다는 훨씬 높아 신경제계획은 이미 한물 건너간 "구경제
계획"이된 느낌.

<>.청와대 보고를 하루 앞둔 10일 정재석 부총리는 오전내내 운영계획
작성의 주무부서인 종합기획과에서 직접 보고자료를 수정토록 지시하는등
파격적인 업무스타일을 보여주기도.

일요일인 9일 자택에서 실무자들이 마련한 계획안을 검토한 정부총리는
이날 출근 직후 간부회의를 가진뒤 바로 종합기획과에서 김태연 차관보
장승우 경제기획국장을 옆에 앉혀놓고 직접 자구 수정을 지시.

이 자리에서 정부총리는 청와대 보고자료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빼고
핵심만을 넣도록 해 막판에가서 분량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됐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이번에 마련된 올해 경제운용계획은 본안과 청와대보고에서 사용한
요약본의 체제가 달라 정부총리판과 박재윤 경제수석판을 따로 마련한 것
이라는 뒷얘기가 나돌기도.

본안은 주로 개혁과제 중심으로 이루어져 박수석이 주장한 신경제의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반면 정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할 요약본은
5대 중점시책 과제로 이루어져 따로따로 노는 느낌.

실무작업을 한 기획원직원들은 청와대와 부총리의 입맛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신경제체제에 따른 본안과 요약본을 만들고 또 중점시책과제 위주로
이루어진 본안과 요약본을 따로 작성,결국 4가지 계획안이 마련됐다가 결국
요약본은 정부총리식으로 하고 본안은 박수석식으로 인쇄하는데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한편 그동안 관례적으로 사용해오던 "경제운용"이란 용어대신에 청와대의
주문대로 "경제운영"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해 "말"싸움에선
청와대가 이긴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