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민간 아파트에 단열 성능과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는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화되면서 공사비가 최대 30%가량 뛸 것이란 소식(한경 6월 5일자 A1, 3면)이다. 정부가 2021년 말 세운 ‘2050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른 조치다. 건설사는 원가 상승분을 분양가에 전가할 수밖에 없어 서민의 내 집 마련은 더욱 멀어질 전망이다.

‘국제사회 선진국 진입’이란 조급증에 포획돼 밀어붙인 정책이 불러온 참사의 단면이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만료를 6개월 앞둔 2021년 11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과 ‘2050년 탄소배출 제로’ 목표를 공언했다. 알고 보면 탄소중립은 문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발표한 탈원전 정책의 후과였다. 산업계 여론 수렴은 물론 타당성 검토도 거치지 않았다. 이 국제협약에는 ‘후퇴 금지 원칙’이 내장돼 있어 목표 수정조차 어렵다.

이로 인해 탄소 저감 부담을 직접 떠안은 제조업과 에너지업계는 탄소배출권 구입 등으로 1000조원 이상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산업계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줄이는 과정에서 생산액은 270조원 줄고, GDP(국내총생산)는 83조5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업계 추가 비용의 일부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의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로 아파트 분양가가 오르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부 탄소 중립안을 실행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릴 경우 우리 국민은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연간 41조~96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념에 치우친 잘못된 정책의 후유증은 이렇게 두고두고 국민 피해로 돌아온다. 외교적 생색은 문 정부가 냈지만, 부담은 불가피하게 다음 정부 몫이다. 정부는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점진적이고 신축적인 이행 방안 등 연착륙 해법을 찾아야 한다. 탄소 배출이 사실상 없는 원전 비중을 확대하면서 탄소 감축 기술 개발에 대한 세제 지원 등 인센티브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