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보유한 자사주(자기 회사 주식) 강제 소각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자사주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힌 가운데 금융발전심의회가 최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하면서다. 이런 반시장 규제는 기업을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100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86개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수단으로 쓰인다는 게 강제 소각론자의 시각이다. 그러면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부양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해외 주요국에 있는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가 없는 국내 기업에 자사주는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속수무책이 된다. 안 그래도 행동주의를 표방한 펀드의 기업 사냥이 급증하는 와중에 한국이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기업은 거액의 비용을 경영권 방어에 쏟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사주 소각이 주가를 띄워 주주 이익 환원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발행주식 수가 줄면 주당순이익(EPS)은 상승하지만 소각한 금액만큼 보유 주식이 사라져 기업 가치도 줄어든다. 통상 자사주 소각 직후 주가는 일시적으로 올랐다가 다시 소각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히려 자사주 물량이 주식시장에 쏟아질 경우 소액주주 피해가 불가피하다. 기업 재산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 취득과 처분을 기업에 맡기는 현행 상법과 상충하는 문제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이미 기업 스스로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 경영을 적극 펴나가고 있다. 굳이 자사주 소각을 유도한다고 해도 결정은 기업 자율에 맡기고 소각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맞다. 기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자본시장을 흔들 수 있는 섣부른 논란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