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전력의 자체 신용등급을 ‘Baa2’에서 투기 등급 직전인 ‘Baa3’로 강등했다. 전기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한전의 100%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자체 신용등급도 한전과 똑같이 떨어졌다.

무디스는 전기요금 인상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한전의 부채가 늘어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전의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85% 이상으로 높아지면 투기 등급인 ‘Ba1’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전은 회사채 발행 시 국가보증을 받는 공기업으로, 자체 신용등급 하락이 당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글로벌 투자자에게 한국의 대표 공기업 한전의 열악한 재무 상태를 환기하는 경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앞서 S&P는 지난해 5월 한전의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에 해당하는 ‘BB+’로 떨어뜨린 바 있다. 얼마 전 한전 주주인 영국 투자회사가 대규모 적자에도 전기요금을 제대로 인상하지 못하는 데 대해 항의서한을 보낸 것은 한전에 대한 국제 자본시장의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는 신용등급 하락 차원을 넘어 국내 산업 기반을 흔들 우려까지 있다. 전기차 시장 급성장,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등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부응하는 송·변전 설비 투자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가의 70%도 안 되는 현행 전기요금 구조 탓에 한전은 2021년부터 올 1분기까지 45조원의 적자를 냈다. 부채는 작년 말 기준 193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한전 장기투자 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전국 송전선로 확충에 56조50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의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비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한전 재무구조를 방치하다 반도체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는 일이라도 생기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재앙이 될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