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뚫리는 방탄복을 입혔다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의 창검이나 화살을 막으려면 갑옷과 투구가 필수였다. 철사 따위로 만든 고리를 엮은 사슬갑옷, 금속판을 자르고 접고 두드려 만든 판금갑옷, 철편을 이어 붙인 찰갑(札甲·비늘갑옷), 여러 개의 기다란 금속판을 붙인 판갑(板甲) 등 종류도 다양했다. 머리와 몸통은 물론 팔, 어깨, 목, 옆구리, 허벅지, 정강이 등 부위별 부속 갑옷도 발달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에게도 갑옷을 입혔으니 고구려의 철갑기병인 개마무사(鎧馬武士)가 대표적이다.

총기가 칼과 창, 화살을 대체하면서 갑옷과 투구는 방탄복과 방탄모로 바뀌었다. 최초의 방탄복은 16세기 유럽에서 등장했다. 1840년대 아일랜드의 재단사가 실크를 겹쳐 총탄을 막는 방탄복을 만들었으나 실크 대량생산이 어려워 양산이 불가능했다. 1870년대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삼베 13겹을 겹쳐 만든 면제배갑(綿製背甲)은 국내 최초의 방탄복이라 할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강철판이 대세였던 방탄복의 신기원을 이룩한 건 강화섬유다. 1973년 듀퐁사가 개발한 케블라는 가볍고 값이 싸면서도 강도는 강철의 5배를 넘어 방탄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지금은 케블라보다 탄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충격 흡수력이 뛰어난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HMWPE)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세라믹이나 금속판을 덧대 권총탄은 물론 소총탄, 파편 등을 모두 막아낸다.

고강도 섬유를 그물 형태로 여러 겹 쌓고 압축해 총탄의 움직임을 멈추고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방탄복의 기본 원리다. 섬유의 소재와 적층 구조, 탄성계수, 세라믹이나 금속판의 경도와 강도 등이 성능을 좌우한다. 지난해 우리 군에 납품돼 장병들이 사용 중인 방탄복 5만여 벌이 총알이 뚫고 지나가는 불량품이라고 한다. 50겹의 방탄 소재로 만든 방탄복인데 납품업체가 사격 시험 때 총알이 뚫고 지나가는 특정 부위에만 소재를 추가로 덧대는 방법으로 방탄 성능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방탄복 제작을 승인했다는 점이다. 관련자는 단순 문책에 그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친’ 형법상 이적죄로 다스려야 한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