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과 K컬처가 세계 일류로 도약했지만 정치만큼은 삼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일 것이다. 미국 상원 법제사법위원회가 엊그제 인공지능(AI)업계 고수들을 불러 개최한 청문회는 그런 인식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챗GPT를 만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등과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AI의 역할’에 대해 밀도 있는 토론을 펼쳤다.

‘쇼’할 일 있을 때만 기업인을 불러 호통치고 군기 잡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부러운 장면이었다. 의회가 판을 깔자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AI 규제 필요성’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AI 개발 허가제’를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거대한 경제·사회적 변곡점에서 이해관계자와 입법자들의 심도 있는 토론 장면은 그 자체로 의회민주주의 품격과 미국의 힘을 입증했다.

미래지향적 의제에 여야가 협력하는 모습이 미국 의회만의 일도 아니다. 프랑스의 연금개혁법 입법 성공은 상원의원들이 국민 70%의 반대에도 국가 미래를 위해 협력하고 결단했기에 가능했다. 독일 의회는 두 달 전 스스로 정원을 14.4% 줄이는 선거법 개혁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한국 국회만 미래를 외면한 채 ‘갈라치기 정치’로 내달리고 있다. 소비 활성화가 시급한데 12년이나 표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거론하기도 입 아프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반도체 지원법을 미국 대만 등 경쟁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통과시키는 데도 거의 8개월이 걸렸다. 연금개혁을 정부에 떠넘기면서 총선용 ‘예비타당성 완화’ 입법엔 여야 만장일치다. 거대 야당은 대통령 거부권이 예상되는데도 농민·대학생·간호사 등 특정 직군 표 확보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국민 대표로서의 최소한 품격도 실종이다. 6·25전쟁 때 2만7000명의 젊은이를 파병한 우방(캐나다) 총리의 국회 연설에서 의원 절반이 ‘노쇼’를 했다. 1년여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설(화상)에 60여 명만 참석해 질타받고도 달라진 게 없다. 업무 성과는 꼴찌지만 국민소득 대비 의원 연봉은 3.36배로 미국(2.48배) 일본(2.11배) 프랑스(2.10배) 등 선진국을 압도한다. 이런 퇴행적인 국회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