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급 위주 주거복지 이젠 바꾸자
최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보유 중인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을 본격화하겠다고 예고했다. 노후 아파트를 재건축해 현재 4만 가구 수준인 공급을 10만 가구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공급 위주의 주거복지 정책은 공공부문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인구 고령화로 변화하는 주택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개선이 요구된다.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비효율성은 행복주택의 높은 공실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행복주택은 신혼부부 대학생 등 젊은 계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 재정과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공급하는 50㎡ 미만의 소형 임대주택이다. 그러나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건설형 행복주택 기준 연도별 공실률을 보면 2018년 4.4%였던 공실률이 2020년 8.2%로 크게 증가했고 3년 연속 8%를 웃돌고 있다.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부랴부랴 입주 자격을 완화하는 한편 공실률이 특히 높은 10∼20㎡ 미만 초소형 주택은 두 채를 터서 넓은 집 한 채로 바꾸는 리모델링 작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이런 수급 미스매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시장 수요에 맞지 않는 공급자 위주 정책을 들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계층별로 공급 가구를 할당해 청년 21만 가구, 신혼부부 25만 가구, 고령자 5만 가구, 일반 저소득층 4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애초 신규 공급을 할 때 여러 행정적·정치적 고려를 바탕으로 계층별 물량 비중을 사전에 정해놨기 때문에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또 대규모 신규 건설을 위해 기존 주민의 반대 등을 피해 새로운 택지를 개발하다 보니 교통 및 생활 인프라가 열악해 입주자의 만족도가 낮고 대량 공실이 발생하게 된 측면도 있다.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같은 공급 위주 주거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일찍 경험한 미국에서는 주택 바우처 같은 수요 중심의 주거복지 제도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주택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주택 바우처는 공공임대주택보다 30%가량 비용이 덜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공공임대주택 공급도 물량을 확대하기보다 낡은 주택을 개선하는 데 노력을 더 기울였다. 신규 공급도 민간 건설업자가 서민임대주택을 건설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줘 지역의 수요를 더 잘 아는 민간이 공급을 맡도록 전환하는 등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친화적 방식으로 접근했다.

한국에서도 주거복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택 급여 및 보금자리론과 같은 수요 중심의 주거비·금융 지원 정책을 확대해 나감과 동시에 공공임대주택 공급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우선 계층별로 주택공급 목표를 인위적으로 설정하기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프로그램을 하나로 통합하고, 대규모 건설형이 아니라 수요가 있는 입지와 크기의 주택을 매입 혹은 임대해 공급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또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부문과의 협력을 강화해 다양한 주거복지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역세권 청년주택은 민간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청년들이 선호하는 교통 요지에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을 혼합해 공급하는 정책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주거복지 정책을 균형 있게 효율적으로 펼쳐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