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꾸라지' 권도형
희대의 폰지 사기로 징역 15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버니 메이도프는 코로나19 대유행 때인 2020년 법원에 석방 탄원서를 냈다. 그는 “내 병(신장병)이 말기다. 판사님도 알다시피 벌써 11년을 복역했다. 솔직히 난 고통받을 만큼 받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기각했고, 메이도프는 결국 옥사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최악의 사기범 중 하나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 창업자는 지난해 1월 유죄 평결을 받았으나, 실제 수감된 건 지난달 27일이었다. 공교롭게도 홈스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는 바람에 수감이 1년3개월이나 미뤄진 것이다. 그는 항소하면서 결혼식 참석을 이유로 예약한 멕시코행 항공편도 취소하지 않았다.

‘50조원 코인 사기’ 사건의 장본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 법원에 보석금 40만유로(약 5억8000만원)를 제시하고 보석을 허가 받았다. 판사가 보석금의 적정성을 따지기 위해 재산 규모를 묻자 그는 “한국에 아파트 한 채가 있다. (다른 재산은) 언론 앞에서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판사의 경고에 아파트값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을 뿐, 나머지 재산에 대해선 여전히 밝히기를 거부했다.

권씨의 은닉재산이 얼마인지 정확한 추론은 어렵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월 그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면서 비트코인 1만 개를 빼돌려 스위스 은행에서 1억달러를 인출한 사실을 파악했다. 한국 검찰은 싱가포르의 테라폼랩스 본사에서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수십억원을 송금한 정황도 포착했다. 법적 대응을 위한 돈으로 추정된다.

대원외고와 미국 스탠퍼드대를 나온 권씨는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직원들과 의사소통도, 언론 인터뷰도 영어로만 했다. 그런 그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을 땐 한국어 통역을 붙여주지 않는다고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다. 향후 한국 송환을 유도하기 위한 ‘쇼’라는 게 중평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피해 구제를 위해선 권씨를 국내로 데려와야 하나, 피해자들 사이에선 미국에서 재판받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한국보다 징역 100년 이상이 예상되는 미국에서 정의라도 구현해야 한다는 응징의 마음에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