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예금보장 한도 높일 때 됐다
여론조사 업체인 갤럽이 지난달 약 3주일에 걸쳐 미국 예금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절반에 가까운 48%가 “예금이 불안하다”고 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집계된 45%보다 높았다.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지역은행이 줄줄이 파산한 데 따른 여파다. 응답자의 소득이 적을수록 불안감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 불신은 뉴욕증시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만들어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이 발생했을 때 이름만 비슷한 펜실베이니아의 리퍼블릭퍼스트은행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25만달러인데도 美 상향 추진

캘리포니아주 팩웨스트은행과 오리건주 퍼시픽웨스트은행도 마찬가지였다. 매각설이 돌며 팩웨스트은행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퍼시픽웨스트은행으로 불똥이 튀었다. 퍼시픽웨스트은행은 부랴부랴 홈페이지 첫 화면에 ‘팩웨스트은행과 사명만 비슷할 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공지해야 했다. 금융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일까. 미 당국은 불안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예금보험 한도 증액이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우선 기업 계좌에 대한 예금보장 한도를 상향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현재 개인 및 기업의 은행별 보험금 한도는 25만달러다.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업 계좌 한도부터 올려달라고 주문한 건 기업의 경우 직원 급여 등 명목으로 한 은행에 큰돈을 예치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보험금 한도를 높이면 규모가 작은 지역은행에서 예금이 덜 유출될 것이란 게 FDIC의 기대다. 현재 미국 내 전체 예금의 43%인 7조7000억달러는 예금자보호법 대상이 아닌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영국 중앙은행도 현행 8만5000파운드(약 1억4200만원)인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험 한도 높여야 뱅크런 차단

한국 역시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개인 및 기업 예금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한도는 5000만원에 불과하다. 2001년 2000만원에서 한 번에 2.5배로 올린 뒤 2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지금도 적다며 상향 조정을 추진하는 미국의 15% 수준이다. 부의 척도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두 배 차이가 안 나는데 보험금 한도는 일곱 배나 차이 나는 것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 내 가계와 기업들의 비보호 예금은 급증세다. 2021년 기준 전체 예금의 68%나 된다는 게 국회 통계다. 더구나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뛰면서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 쏠리고 있다. 위기가 닥치면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일견 건실해 보이는 은행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불안을 느끼는 예금자가 늘면 언제든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자금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금보험은 ‘돈 떼일 불안’을 줄여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미국 은행 위기가 한국에서 재연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보험금 한도 증액은 그 가능성을 낮추는 방안이다. 때를 놓치면 어떤 대책도 사후약방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