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21세기의 왕국과 공화국
미국 독립 때 일군의 식민지인이 이에 맞서 캐나다로 가버린 것은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에겐 새 국가에 국왕이 없다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국가라 함은, 훌륭한 군주와 자애로운 왕비에 충직한 신민이 있어야….’ 절대군주가 버틴 18세기인들에겐 그럴 만한 국가관이다. 입헌군주제, 절대왕권국가, 공화정 같은 다양한 국체(國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역사적으로 오래되지 않았다. 75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도 아직 국민·시민·백성·신민의 개념조차 구별하지 못한 채 예사로 백성이라고 하는 식자가 적지 않다.

오늘 70년 만의 영국왕 대관식은 현대 국가의 국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국(United Kingdom)은 국호에 왕국임을 밝힌 대표적 입헌군주국가다. 왕국을 내세우지만 절대군주 체제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세운 국체 따로, 실상 따로’로 치면 공화국(Republic)도 못지않다. 한국은 영문과 헌법 제1조로 이를 분명히 했다. 공산당 1당 국가인 중국도 공화국을 내세운다. 다만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이라니 결이 다르다. 역시 인민공화국을 표방하지만 북한은 세습 절대왕정에 가깝다. 체코처럼 냉전 시절의 사회주의공화국에서 사회주의를 버리고 그냥 공화국으로 변신한 나라도 있다. 많은 나라가 표방하는 것을 보면 공화정·공화국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고전 중의 고전인 플라톤의 <공화국>에는 모든 정치사상의 기본과 원형 이론이 다 들어 있다. 후세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 책도 드물다.

대관식에 대한 영국 여론을 보면 군주제 찬성(58%)이 반대(26%)보다 많다. 하지만 찰스 3세에게 무릎 꿇는 의식에 왕족·성직자 외 일반인도 포함하려 한 것에 역풍이 분다고 한다. 왕실은 “행사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여론은 냉랭하다. 더구나 대관식 날 군주제 폐지 집회까지 예고돼 있다. 대관식에 1억파운드(약 1665억원)를 쓴다니 경제도 나쁜데 마냥 좋을 리 없다. 18~35세는 군주제 찬성률(39%)도 낮고, ‘대관식에 관심 없다’(64%)고 하니 어디서나 MZ세대는 다르다. “왕실은 영국 최대 관광상품일 뿐”이라는 극단적 평가까지 나오는 판에 영국인들은 언제까지 군주제를 이어갈까.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