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DNA의 날'을 아시나요
지난 주말 큰딸 부부가 여행을 가는 바람에 손주를 데리고 잤다. 아침에 깨서 눈 비비며 씨익 웃는 아이를 보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30여 년 전으로 날아간 줄 알았다. 딸 어릴 때 모습과 똑같았던 것이다. 웃을 때 가늘게 뜨는 실눈이며 오동통한 뺨까지 영락없는 우리 딸이다. 얼마 전엔 스위스에 사는 둘째 딸이 스마트폰 메시지 하나를 재밌다며 보내줬다. 스마트폰이 내 사진 여러 장을 본인 사진으로 인식해 ‘my photo’ 폴더에 넣었다는 것이다. 닮는다는 건 뭘까.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정보를 ‘DNA’에 담아 후대에 전달한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예전에는 단백질이 유전물질이라고 생각했다. 1944년 오스왈드 에이버리가 형질전환 실험을 통해 유전정보의 비밀이 DNA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 생물학계에 가장 큰 과제는 DNA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었고, 그 선두에 선 이가 로잘린드 프랭클린이었다. 그가 1952년 5월에 찍은 X선 회절 사진은 DNA 이중나선 구조 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료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953년 4월 25일 과학잡지 네이처에 DNA 구조를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기념비적 논문 발표 이후 유전자 연구는 생명복제부터 인간 게놈프로젝트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전 세계는 매년 이날을 ‘DNA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 70주년이 되는 해다. 이 뜻깊은 해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국내 연구팀이 DNA가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 RNA(miRNA)’의 생성 원리를 규명한 것이다. 핵심 단백질 ‘다이서’의 작동 원리와 3차원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유전질환과 암의 원인을 찾는 것은 물론 RNA 기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국제적인 찬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생명과학 연구는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한 코로나19도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연구에 따른 PCR 진단법과 mRNA 백신 개발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초과학 연구는 짧은 시간에 뜻깊은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김빛내리 교수의 최근 연구 성과도 11년간 지속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가 바이오제약 분야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긴 안목을 갖고 기초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 DNA 구조 규명 70주년, 기초 연구 지원과 핵심 인력 양성을 통해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할 날을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