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인천 지역의 한 건설업자가 2800여 채 주택으로 2700여억원의 전세보증금 피해를 줬고, 3명이 스스로 목숨까지 끊은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른바 ‘인천 건축왕’ ‘광주(광역시) 빌라왕’과 유사한 전세 사기극이 부산, 구리, 동탄에서도 조직적으로 벌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임대사업자와 중개사가 수십 명씩 무더기로 입건되고 있다. 집값 하락기에 흔히 나타나는 ‘깡통전세’(집값이 전세금보다 싸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와 ‘역전세’(전셋값이 떨어져 주인이 만기 때 보증금을 제대로 반환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겹쳐 전세시장의 혼란과 불안감이 한껏 고조되는 양상이다. 한국 임대시장의 독특한 방식인 전세가 고금리의 하락장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며 총체적으로 불신받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특단의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와중에 야당들은 ‘공공에서 임차인 보증금 우선 반환’ ‘공공 매입’ 등 재원 문제는 감안하지도 않은 설익은 지원 방안을 요구하며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금처럼 여야가 자기 주장만 늘어놓으면 27일 국회 본회의가 열린다고 해도 실효성 있는 대책 및 방지법은 기대난망이다. 차라리 ‘인천 건축왕’과 유력 정치인 연루설에 대한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부터 하는 게 시장 안정에 백번 도움 될 것이다. 수년째 전세 사기극을 도모해온 건축왕에 대해서는 부정 청탁과 강원도에서의 이권 특혜 의혹으로 국토교통부 장관이 특별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이번 사기극을 계기로 집값 하락기 전세로 파생되는 모든 문제를 다 늘어놓으며 끝없이 불안을 가중하거나 중구난방의 이상적 대안이나 내놓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부터 명백한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역전세를 구분한 뒤 고의성이 있는 사기인지, 아니면 고금리와 집값 급락에 따른 결과적 사기인지 나눠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건설업자, 소개 브로커, 중개사가 결탁한 보증금 갈취다. 이런 용납 못할 범죄는 국가의 수사력을 집중해서 단죄해야 한다. 반면 전세와 대출제도, 임대주택의 쉬운 명의 이전 등을 악용한 ‘갭 투기’는 제도적 보완으로 사각지대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

물론 실상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기 행태도, 피해 유형도 매우 다양하다. 우리 주택 임대시장 구조 자체가 단순하지 않다. 날림대책도 안 되지만 과잉 대응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때 숱한 논란 속에 급조된 ‘임대차 3법’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집값이 오르는 경우만 상정했을 뿐 하락기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네 차례의 전세 사기 피해 관련 대책이 나왔음에도 비극적 사태가 이어진 사실을 정부는 엄중히 봐야 한다. 당장 피해자 구제와 긴급 지원, 유사 상황 방지 다 중요하다. 전세 피해자에 대한 대출규제(LTV·DSR)를 제한적으로 풀겠다는 것도 좋다. 일시 중단한 경매 절차의 기준 재정리, 임대사업자의 담보대출 보완, 공인중개사의 책임 강화도 중요하다. 물론 즉각 체감형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바로 효과를 내겠다며 ‘강력 조치’를 도모하면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하거나 ‘시장의 보복’을 초래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여론에 쫓기며 모든 것을 피해자 관점에서만 봐서는 곤란하다. 세입자 우선매수권이나 세입자 채무상환 유예 등도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만, 누가 어떤 돈을 댈지부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이런저런 전세금 미상환을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금융상품으로도 비유되는 전세시장의 ‘퇴진 출구’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열어나갈지도 큰 숙제다. 국회는 전세 사기 대책까지 정쟁거리로 삼지 말고 정부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입법화로 힘을 보태야 한다. 누구나 외쳐온 ‘취약층 주거안정’의 적나라한 민낯을 모두가 돌아봐야 하지만, 특히 자성할 곳은 여야 정치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