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정치는 전기요금에서 손 떼라
자본주의를 시장과 에너지의 함수로 보는 학자도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에너지로 가능했다. 모든 산업혁명은 예외 없이 에너지 혁명과 동행했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3, 그리고 독일 하노버 메세 2023은 공통점이 있다.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AI)이 변화의 한 축이라면,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은 또 다른 축이다.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에너지를 향한 대전환이다. 기회(시장)와 비용(에너지)이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관점과도 맥이 통한다.

“당에서 최종 판단할 부분이다.” 전기요금 인상 여부와 폭은 집권여당에 달렸다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정치가 전기값을 정한다”는 얘기다. 에너지 대전환 앞에서 한국의 현실이 이렇다. 시장경제를 한다는 국가에서 정치가 가격 시그널을 봉쇄하고 있는데 경제부총리는 허수아비로 있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 논리는 언제나 함정을 숨기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물가안정 논리만 해도 그렇다. 에너지도 ‘상품(commodity)’이다. 전기요금이 제때 비용을 반영하지 못한 채 폭탄 돌리기로 가면 나중에 급격히 올라 물가 충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원가보다 낮은 비정상 가격으로 인해 에너지 수입이 증가하고 무역적자가 가중되면 환율이 올라가고, 이는 다시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유발된다. 중장기 물가 상승으로 실물경제 타격이 길어지면 국민은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국민을 위할 줄 몰라서 인상 요인을 가격에 즉각 반영하는 게 아니다. 가격 인상으로 절약을 유도한다는 경제 논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물가 관리는 금리나 통화량 조절로 하는 게 정상이다.

정치가 약자 보호를 내세우지만 그 문제는 가격 정상화와는 별개다. 시장경제는 복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에서 가격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면 정치가 취약계층을 위해 집중적으로 지원할 여력이 올라갈 수 있다. 가격 정상화와 약자 보호, 투트랙이 가능한 이유다. 그런데도 마치 둘 중 하나의 선택지인 양 호도하는 게 5류란 말도 아까운 한국의 정치 수준이다.

전기요금 정상화와 공기업 자구노력을 연계하겠다는 얘기도 황당하다. 공기업 경영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거버넌스의 정점에 있는 정치의 실패요, 정부의 실패다. 가격 정상화는 이제라도 ‘에너지의 정치화’를 막자는 게 목적이다. 두 이슈 모두 정치의 실패, 정부의 실패가 본질인데 마치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유체 이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가 지금처럼 전기요금을 틀어쥐면 더 큰 정치 실패와 정부 실패로 갈 공산이 크다.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한국전력의 과도한 채권 발행은 금융시장 불안의 상시 변수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민간기업 자금난이 심화하면 무슨 연쇄 파장이 야기될지 모른다. 하루 38억원에 달한다는 한전의 이자 부담도 더욱 늘어날 게 뻔하다. 국민 입장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원금에 비싼 이자까지 더해 지금보다 더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눈속임 정치의 배임이 따로 없다. 한전은 공기업도 아닌 ‘상장’ 공기업이다. 51% 정부 지분만 믿고 가격 통제로 폭주하는 정치를 49%의 소액주주가 가만있을 리 없다.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고 외국인 투자자도 있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 사태라도 벌어지면 누가 책임질 건지 묻고 싶다.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국유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곧 전력산업의 파괴를 뜻한다. 가격 통제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2050년 탄소중립 이행에 필요하다는 2700조~3500조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가격 신호가 작동하지 않으면 에너지 절약도 탄소중립도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다. 에너지 기술혁신과 전력계통망 투자도 물건너간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석유와 중동이란 ‘에너지 지정학’에서 오는 위기를 영영 벗어날 길이 없어진다.

선진국에서 물가당국이 전기요금에 간여할 수 없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치 압력을 받지 않는 독립규제기구가 시장 원칙과 절차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겉으로만 자유니 시장경제니 떠드는 사이비 자유주의자, 사이비 시장경제주의자가 한국에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