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낙화의 무상함과 긍정의 자세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 가로수 벚나무들을 보니 어느새 아름다운 꽃잎을 다 떨구고 푸른 잎으로 갈아입고 있다.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벚꽃도 빨리 피고, 져 버렸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그렇게 아름답던 꽃들이 생기를 잃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온 천지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찬란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봄날이 벌써 갔구나”하는 세월의 무상함이 새삼 다가온다. 정일근 시인은 그의 시 ‘봄날은 간다’에서 이런 심정을 잘 표현했다. 그는 살짝 불어오는 바람도 이기지 못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나무와 이별을 고하는 그 봄꽃들의 낙화 현상을 ‘시들해진 청춘’의 정념과 대비시키고 있다.

“벚꽃이 진다. (중략) 내 생도 잔치의 파장처럼 시들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중략) 우리는 모두 타인의 삶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일 뿐이다. (중략)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이 없지만, 봄날은 간다,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

집에 들어와 다시 이 문장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처럼 꽃이 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세월은 가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과거에 연연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다가오는 미래는 아무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인지라 이 또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제어하기 어렵다.

자연을 포함한 우리는 모두 태어나는 순간 바로 소멸을 향해 달려간다. 아! 탄생과 성숙, 그리고 소멸의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의 찬란한 봄날은 화려하게 왔다가 허무하게 간다.

불현듯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 이 순간을 즐겨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미 지나간 과거도, 알 수 없는 미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면, 지금 이곳에서 내 일에 더 집중하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밝고 긍정적인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덧없이 세월은 자꾸 흘러간다. 동시에 우리들의 봄날은 저 멀리 사라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명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처럼 오늘도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