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교육부 관련 법령은 사립학교의 직인 크기와 서체까지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가 사립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을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기획재정부가 ‘공기업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기업의 경영을 매년 평가하며 통제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값 등록금’ 정책이 이런 심증을 굳혀준다.

2012년부터 본격 시행된 ‘반값 등록금’의 본래 이름은 ‘소득연계형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이다. 반값 등록금은 소득 중하위 계층의 대학 등록금 전액 또는 절반 정도를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국가장학금 1유형’과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해야만 지원받을 수 있는 ‘국가장학금 2유형’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부가 국가장학금 2유형을 통해 대학에 ‘이인삼각’의 동행을 강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 대학의 체격과 체력 모두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간한 ‘2022 고등교육현안 정책자문 자료집’ 중 ‘반값 등록금 정책의 성과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실험실습비가 2011년 18만원에서 2021년 13만원으로, 도서 구입비는 13만원에서 10만원으로 떨어졌다.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도 같은 기간 1200만원에서 84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사립대 전체로 매년 2조원 이상의 결손이 발생한 결과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2022년 우리나라 대학경쟁력 순위가 세계 63개국 중 46위라고 발표했다. 국가경쟁력 순위가 22위인 점을 볼 때 우리 대학이 중병(重病)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대학교수의 평균 월급이 대졸 초임보다도 낮다는 조사 결과도 거꾸로 가는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교수신문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대학 조교수 평균 연봉은 5353만원으로 매출액 상위 94개 대기업의 대졸 사원 평균 연봉(5356만원)보다 적다. 이공계의 실험실, 실험 기자재 부족 현상 또한 과학영재의 의대 쏠림 현상을 막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이며, 세계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인재들이 국내에 자리 잡는 걸 꺼리는 배경이다. 인공지능(AI), 화학·바이오, 드론, 차세대 모빌리티 분야 등을 누가 이끌 것인가.

대학이 중심이 되어 미래 아젠다를 선점해 나가야 ‘스트롱코리아’를 만들 수 있는데, 현재 대학은 깊은 겨울잠을 자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재정을 지렛대로 지방 대학을 살리겠다는 청사진이다. 기시감이 든다.

합당한 등록금을 받고 최고 교수진과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사립대엔 자율권을 대폭 주는 정책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 정상급 대학의 홀로서기 실험부터 도와야 한다. 또 지방 국공립대학을 미국의 주립대학 시스템처럼 묶어 구조조정과 특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유·초·중·고 교육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대학 혁신 사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속도감 있게 논의해야 한다. 교육부는 큰 그림을 그리고, 대학은 각자도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대학을 산하 공기업처럼 다루면 국가경쟁력보다 못한 지금의 대학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