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용인 클러스터, 문제는 전기다
지난 3월 15일 정부는 경기 용인에 2042년까지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 소재·부품·장비 업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등 최대 150개 기업을 유치할 계획을 발표했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 첨단 산업은 핵심 성장 엔진이자 안보전략 자산이고, 일자리 및 민생과도 직결되는 만큼 반드시 성공해야 할 국가적 사업이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의 핵심에 있어 정부와 민간의 주도면밀한 추진 전략이 우선 필요하다. 그런데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피’라고 할 수 있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 또한 제때 이뤄져야 한다.

이 사업은 앞으로 20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추진될 예정이지만, 에너지 안보와 기후 대응 차원에서 지금의 에너지 정책에 많은 과제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공단 운영에 필요한 전력 사용량이 만만치 않다. 지금도 삼성전자는 한국전력으로부터 공급받아 사용하는 전력이 연간 25.8TWh로 서울시 가정용 전력 사용량의 1.8배에 이를 정도다. 그런데 용인 공단은 그 규모가 최근 가동한 평택캠퍼스의 2.5배에 달하니 새로운 공정 도입에 따른 에너지 효율 향상을 감안해도 사용 전력이 엄청나게 늘어날 전망이다. 더구나 평택공장을 가동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전력을 공급받기 위한 송전선로 건설에 4년 이상 애로를 겪다가 가까스로 지역 주민들과의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감안하면 공단 계획 단계부터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또 삼성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화’를 위해 사용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 선언을 한 만큼 현재와 같은 화석연료 발전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을 수도 없다.

통상 수급계획을 수립할 때는 매년 전력소비를 예측하고, 이에 필요한 발전설비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발전소로부터 소비지까지 전력을 수송할 송전망 건설을 확정해 왔다. 그리고 정해진 기간 내에 전력을 경제적으로 생산해 소비지까지 공급하는 과제를 사업자가 요청하면 정부와 한전이 책임지고 수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용인 사업은 사업 규모와 특성을 감안하면 종전의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에 비해 복잡해지고 제약 요인도 까다로워졌다. 공단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전력을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함은 물론 RE100 달성을 고려해 재생에너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용인 인근에서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 공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곳에서 송전선로를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제약 요인을 풀기에는 이미 곳곳에서 송전선로 건설에 애로를 겪는 한전에만 의지할 수 없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그린수소를 공단 인근까지 가지고 와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 등 전혀 새로운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

변화하는 에너지 환경에서 기업은 자신이 사용할 전력의 생산방식까지 알아야 해서 과거처럼 전력 공급을 정부와 한전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또한 전력을 생산할 발전소, 수송할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관련돼 문제를 제때 풀기에 애로가 많다.

기업과 중앙정부, 지방정부, 한전이 파트너십을 구축해 대규모 공단의 완성까지 현재 전력 공급 방식뿐 아니라 미래 기술을 활용한 최적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용인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에너지 정책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