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에 주재하는 대사·총영사 166명이 모이는 재외공관장회의가 닷새 일정으로 시작됐다. 4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회의 주제를 ‘세일즈 외교’로 잡은 것은 시의적절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다보스포럼 이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고 있는 터라 ‘주재국 1호 영업사원’이 돼야 할 공관장들의 책임과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세일즈 외교는 낯선 과제가 아니다. 역대 정부마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과 시장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세일즈 외교를 강조했다. 올해는 상황이 더 엄중할 뿐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우리 수출은 활력을 잃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은 언제 어디로 전이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영원한 동지도 없고, 적도 없는 경제전쟁의 시대다. 자국 산업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조차 크게 고려하지 않고 규제를 가하는 냉혹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지원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안보가 화두일 때 재외공관 외교관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주재국 핵심부에서 벌어지는 작은 변화도 기업과 국내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재외공관과 외교관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공관장회의에서 “시대적 전환기에 과거를 답습하는 틀에 박힌 외교는 설 자리가 없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외교 현장은 치열한 정보전과 협상이 펼쳐지는 전쟁터다. 외교 기밀을 다뤄야 하는 특성상 공관장들이 수주 및 수출 확대, 그리고 투자유치 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드러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경제 외교의 크고 작은 성과들이 공관 평가와 인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

당근과 채찍이 중요하다. 스스로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의 의견을 평가 지표로 만들어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주재국 1호 영업사원으로서, 제 역할을 한 공관과 미흡한 공관에 대한 평가는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마다 한 번씩 모여 세일즈 외교를 구호처럼 외치는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세일즈 외교는 대한민국 외교관의 기본 책무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