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강요된 '투잡'의 비애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감 감소로 생활고를 하소연하는 근로자들 글이 적잖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저녁거리를 살 수 있게 일 좀 더 하게 해달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정책이 ‘투잡과 아르바이트가 불가피한 삶’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주 52시간제로 뿌리산업 근로자들에게 투잡은 일상이 됐다. 대학생 자녀를 둔 자동차 부품업체의 50대 A부장은 야근과 잔업수당이 끊기면서 월급이 크게 줄자 학비 마련을 위해 급기야 주말마다 양파농장, 마늘농장에서 작물 상·하차 부업을 한다. 조선소 용접공 B씨 부부는 야간 대리운전에 나섰다. 역시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B씨는 아내를 데려다주는 픽업 기사 역할을 하고, 아내는 대리운전을 한다. 조선소 협력업체들은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뛰고 피곤한 상태에서 출근한 직원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월요일 오전에 강제 휴식 시간을 두고 있다. 사실 이들에게 겸업을 금지한 사규는 사문화한 지 오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투잡을 뛴 사람이 54만6000명으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 고물가, 고금리 등 악화한 경제 상황과 더불어 주 52시간제로 소득이 준 근로자들이 부업시장으로 내몰린 결과다.

문 정부에서 근로시간 단축의 이론적 근거는 ‘노동 수요 불변 가정’이다. 근로시간을 줄여도 현재의 작업량이 동일하게 필요하니 신규 채용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여러 나라에서 노동비용을 증가시켜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아 오류(Lump of Labor Fallacy)임이 판명 났다.

이런 선무당 사람 잡는 정책을 바로잡으려는 현 정부의 개편안마저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기업·공기업의 젊은 사무직이 중심인 MZ 노조의 반발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생산직, 스타트업의 같은 MZ세대는 ‘저녁 먹을 수 있는 삶’을 위해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우성친다. 윤석열 대통령은 “MZ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했는데, MZ세대 중에서도 한쪽의 얘기에 귀를 더 기울이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