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애플 I’ 실물을 봤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에 만든 애플 최초의 컴퓨터다. 반세기 전에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을까. 탄복하다가 벽면의 글귀를 발견했다. “애플 I, 마음의 자전거(Apple I, a bicycle for the mind).”

축적된 동력이 '선순환 고리'

잡스는 197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를 ‘마음의 자전거’라고 표현했다. 1981년 미국 ABC 인터뷰에서도 개인용 컴퓨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 잠재력을 더 넓히고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일을 대신할 수 있는 21세기의 자전거를 만들고 있습니다.”

앞서 그는 듀크대 교수팀의 한 보고서에 매료됐다. ‘이동 효율성’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이 걸어서 1㎞를 이동하는 데 에너지가 약 75㎉ 필요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면 5분의 1(15㎉)밖에 들지 않았다. 자전거의 효율성은 말과 자동차, 헬리콥터보다 높았다. 잡스는 이런 효율성을 지닌 ‘창의적 도구’가 개인용 컴퓨터라고 생각했다. 이 덕분에 우리는 누구나 ‘마음의 자전거’를 갖게 됐고 인류 문명사를 새로 썼다.

잡스의 ‘아이디어 바퀴’가 자전거였다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경우는 ‘플라이휠’이었다. 베이조스는 닷컴 버블 붕괴 직후인 2001년 경영 구루 짐 콜린스를 초청했다. 그때 찾은 답이 ‘플라이휠 효과’였다. 플라이휠은 관성의 힘으로 회전운동을 하는 무거운 바퀴다. 콜린스가 이를 ‘서서히 축적된 성과가 누적돼 다음 단계 도약의 동력이 되는 선순환 고리’로 개념화한 것을 베이조스는 경영에 도입했다.

베이조스가 임원들 앞에서 냅킨에 그려가며 설명한 선순환 고리의 원리는 간단하다. 가격을 낮추면 고객이 모이고, 고객이 늘어나면 입점 판매자가 많아지며, 규모가 커지면 고정비용이 낮아지고 효율성이 높아져서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

이는 세계적인 펀드 회사 뱅가드의 확장 모델로도 활용됐다. 뱅가드는 뮤추얼펀드 수수료를 낮추면서 고객의 장기투자 수익률과 충성도를 높이고 운용 자산을 늘려 규모의 경제로 수익을 극대화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테슬라 역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디자인, 첨단 공장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창출하고 인프라 확장과 결합을 통해 선순환을 이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것이다. 챗GPT 시대도 마찬가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샘솟는지, ‘아이디어의 바퀴’를 어떻게 활용하고 서로 연결할 것인지에 따라 미래가 좌우된다.

바퀴는 인류 역사를 바꾼 발명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오른쪽 위)를 바탕으로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이 재현한 태엽 자동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오른쪽 위)를 바탕으로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이 재현한 태엽 자동차.
바퀴를 처음 발명한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이었다. 바퀴는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변환하는 동력기관일 뿐만 아니라 획기적인 이동수단으로써 인류 역사를 바꾼 최고의 발명품이다.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말, 바퀴, 언어>의 데이비드 앤서니도 우리 삶을 가장 윤택하게 만든 주역으로 바퀴를 꼽았다.

바퀴는 발명과 재발명의 혁신을 거듭해왔다. 처음에는 차축과 바퀴가 함께 굴러가는 윤축(輪軸)밖에 없었지만, 차축 양 끝에서 두 바퀴가 따로 회전하는 독립차륜(獨立車輪)으로 발전했다. 이후 각각의 바퀴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캐스터(caster)’까지 등장했다. 여행가방과 휠체어, 피아노 밑에 달아 쓰는 캐스터는 놀라운 발명이지만, 실제 사용된 건 19세기 초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바퀴가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인식도 근대에 들어서야 생겼다. 도로가 많지 않은 산악지형에서는 바퀴의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이처럼 같은 발명품이라도 사용자의 인식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문제는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짐 콜린스가 “세상 어디에도 똑같은 플라이휠은 없다”고 말했듯이 혁신은 늘 획기적인 발상에서 시작된다.

자, 새로운 ‘아이디어의 바퀴’를 돌릴 주역은 누구인가. 핵심 요소는 ‘생각의 각도’다. 그중에서도 ‘곡선형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 곡선은 직선보다 폭이 넓고 힘이 세다. 과학의 발달도 곡선의 발견 위에서 가능했다. 나사처럼 일정한 간격을 가진 아르키메데스 나선, 앵무조개 껍데기와 솔방울을 닮은 베르누이 나선 등 신비로운 곡선이 많다.

왜 곡선이 직선보다 빠를까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새겨진 스티브 잡스의 명문 ‘마음의 자전거(a bicycle for the mind)’.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새겨진 스티브 잡스의 명문 ‘마음의 자전거(a bicycle for the mind)’.
곡선이 직선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건 ‘사이클로이드(cycloid) 원리’다. 사이클로이드는 바퀴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자전거 바퀴에 점을 하나 찍고 나아갈 때 그 점이 그리는 곡선을 말한다. 이를 활용하면 물체의 최단 시간 이동 거리를 찾을 수 있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공을 굴릴 때 직선 경로가 가장 빠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릇 안쪽 면 같은 곡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기와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짐 콜린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냅킨에 그린 ‘플라이휠 효과’ 개념도.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짐 콜린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냅킨에 그린 ‘플라이휠 효과’ 개념도.
붕도 이 원리로 빗물을 빨리 흘려보낸다.

그러니 세상을 바꿀 바퀴를 꿈꾸는 이들이여. 어릴 적 두레밥상처럼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의 생각을 펼쳐 보자. 문인 예술가들처럼 은유와 상징, 상상과 창의의 지렛대로 미래의 바퀴를 굴려보자. 동서양 시인과 작가, 예술가, 창업가들이 인문과 기술의 접점을 그토록 강조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잡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한때는 다 상상에 불과했다”며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라”고 권했다. 1970년대 후반 황동규 시인은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에서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때가 잡스의 ‘애플 I’이 등장하던 시기였으니, 이 또한 놀라운 곡선의 은유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