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주거 파격없인 저출산 극복 없다
미국 연수 시절, 옆집은 아이가 넷이었다. 두 명의 중학생 딸과 중남미 국가에서 입양한 초등학교 1, 3학년 남자아이들이었다. 2017년 당시 20만달러 안팎이던 애틀랜타 외곽 소도시의 타운하우스, 축구클럽 가는 날 외에는 방과 후 하루 종일 야외에서 놀던 아이들,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 넷이 버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올초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한 보고서가 눈길을 끌었다. ‘주택가격 상승이 출산율 하락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는 2010년대 들어 국내에서 집값 상승 충격이 1~2개월 뒤 출산율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집값이 1% 오르면 향후 7년에 걸쳐 합계출산율이 0.014명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2019~2021년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률 48.3%를 단순 대입하면 합계출산율이 약 0.7명 감소하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세계 1위 저출산율 핵심은 집값

통계청 국민이전계정 생애주기적자 구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자녀에게 들인 비용이 흑자로 전환하는 데는 출생 후 26년이 걸린다. 한 명당 비용은 6억1583만원이다. 집값과 출산율의 상관관계가 갈수록 커지는 이유는 비용 부담으로 출산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창조적 파괴’로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미 80여 년 전 이를 예견했다. 1942년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그는 자본가는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효용을 최대화하는 보통사람화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비용마저 냉정하게 계산하게 되면서 저출산이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경사회에서 빠르게 산업화한 국가들이 예외 없이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을 보면 81년 전 슘페터의 혜안은 예언에 가깝다.

多産신도시 등 파격 대책 시급

본지의 최근 조사 결과 수도권 청년 주거 대책은 무려 101개에 달한다. 실효성 낮은 대책이 부지기수인 데다 그나마도 임대주택 공급에 치우쳐 있다. 정부의 청년 기준인 19~34세의 대부분은 학생 또는 미혼층이다. 결혼 적령이 늦어지면서 요즘은 30대 중반 이후 결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초유의 저출산 상황을 겪고 있지만 아이를 낳는 가구를 위한 대책은 청약가점과 한정된 특별공급 정도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효용보다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청년 주거 대책과 별개로 출산가정엔 파격 대책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국민평형을 반값에 제공하는 ‘다산(多産)신도시’라도 공급하겠다는 특단의 각오가 필요하다. 16년간 투입된 280조원의 저출산 예산은 이런 특별도시 수십 개를 공급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수도권에서 위례급(약 4만5000가구)의 신도시 조성비는 대략 10조원 안팎이다.

예산만 낭비하는 대책을 남발하기보다 가장 큰 걸림돌인 주거 문제를 저출산 해소의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 미래의 부모에게 비용을 뛰어넘는 경제·사회적 효용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1위 저출산 국가의 오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 인구 소멸을 향해가는 저출산 국가에선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에 버금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