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정부는 국민에게 술을 권하는가
요즘 술값 때문에 난리다. 일반 식당에서 파는 소주·맥주 가격이 병당 5000원 위로 뛰어오른 게 발단이다. 정부는 연일 술값을 잡기 위해 강공을 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소주·맥주 원가 구조 실태 조사에 나서고 국세청은 주류업체들에 전화를 돌렸다. 급기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에 연동되는 맥주·탁주 세금 제도를 재검토하겠다고 지난 9일 선언했다. 2020년 맥주·탁주 주세 체계를 종량세로 바꾼 지 3년 만에 세율 부과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술은 생활필수품이 아니다. 공공재도 아니다. 그저 기호품이다. 국민 건강에도 좋을 게 없다. 그런데 정부는 왜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개편된 지 얼마 안 된 세금 제도를 다시 뜯어고쳐서라도 술값을 잡으려 하는가.

당면한 물가 상승 문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따져보자.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총 458개 상품 및 서비스 품목의 소비자 구입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여기에 소주와 맥주도 들어가긴 한다. 가중치를 보면 1000을 기준으로 맥주 3.2, 소주 1.8이다. 식당에서 파는 맥주와 소주의 가중치는 각각 5.4, 2.8로 더 높다. 하지만 전세(54.0), 휴대폰 요금(31.2), 휘발유(20.8)에 비하면 소비자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다. 심지어 생선회(9.1)나 커피(7.2)보다도 낮다. 술값이 오른다고 전체 물가지표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토요칼럼] 정부는 국민에게 술을 권하는가
일각에선 정부가 세수금 때문에 술값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술값이 오르면 사람들이 술을 적게 마셔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가정을 한 것이다. 지난해 국세 수입은 부가가치세, 소득세, 법인세 할 것 없이 모조리 전년 대비 줄었다. 오직 주세만 1000억원 늘었다. 올해도 세입 여건이 빡빡한 만큼 주세라도 붙들어야 하는 배경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우리 재정 규모에 비춰볼 때 억측이라고 본다. 전체 국세 수입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재부에 왜 이렇게 술값에 예민한지 물어봤다. “나비효과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주류 제조사가 출고 가격을 100원 인상하면 일반 식당에선 1000원이 오르고, 이에 따라 서민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민심이 흉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가격 통제 시도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가격이 한꺼번에 튀어 오르는 용수철 효과를 부른다. 소주 주정 원료인 타피오카 전분 가격은 지난해보다 7% 상승했다. 소주 병값은 올해 20% 인상됐다. 원가가 줄줄이 올랐는데 언제까지고 제조사의 출고 가격을 틀어막을 수는 없다. 특히 맥주 제조사는 출고 가격을 동결하면 4월 세금 인상분(500mL 캔맥주당 21.8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가격을 동결한 채로 길게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주류업계에서 나온다. 하반기에 눌러놓은 술값이 한꺼번에 튀어 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단기적으로도 출고 가격 통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이미 많은 식당이 메뉴판에 소주값을 6000원, 7000원으로 바꿔 달고 있다.

맥주·탁주 세율의 물가연동제를 개편하겠다는 추 부총리의 시도 역시 이상한 방향으로 출구를 찾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애초에 매년 소비자물가를 연동해 맥주·탁주에 종량세를 매기게 된 이유는 주종 간 세금 형평성 때문이다. 종가세를 적용받는 소주는 제품 가격이 오른 만큼 세금이 자동적으로 더해지는 구조인데, 종량세인 맥주·탁주의 세율만 고정되면 형평에 어긋난다는 논리였다. 추 부총리 생각대로 몇 년에 한 번씩 맥주·탁주 세율을 국회에서 정하도록 한다면, 세율을 정할 때마다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맥주·탁주 세율 인상에 따른 비난의 화살을 정부에서 국회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국민 건강 측면에서도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15년 담뱃값 인상 시 건강에 대한 유해성을 비중 있게 고려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주세 등 주류 가격과 관련된 정책을 마련할 땐 반드시 국민 건강을 고려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서민이 마시는 술이라고 무조건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면 담뱃값을 한꺼번에 2000원씩이나 올린 정책은 무슨 논리로 설명할 텐가.

‘서민의 술값은 오르면 안 된다’는 정책 프레임은 지나치게 낡기도 했지만 예전보다 부작용도 훨씬 크다. 공공재가 아닌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결정권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언제나 옳다. 서민의 애환을 술값 압박으로 달랜다고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