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은행 더 늘린다고 경쟁 촉진될까
시작은 지난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였다. 은행 최고경영자 선임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논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은 공공성이 강해 정부가 관여하는 것이 관치가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2주 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틀 뒤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은행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던 윤 대통령이 민간 은행에 대해 강한 발언을 한 배경에는 최근 은행의 행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있을 것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많은 국민이 이자 부담의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은행은 역대급 수익을 올리면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은행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관치 논란은 격화될 것 같다. 다만 역대급 수익의 근본 원인이 은행산업의 경쟁 부재에 있다는 인식에는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국내 은행 수익의 90% 이상은 이자에서 나온다. 이자수익은 순이자마진(NIM) 혹은 간단히 예대금리차에 따라 결정된다. 예금과 대출을 늘리기 위한 은행 간 경쟁이 없다면 예대금리차가 클 것은 자명하다. 경쟁 부재는 은행에 시장지배력(market power)을 주고, 은행은 이를 이용해 비용 대비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은행산업은 5대 시중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의 자산이 은행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어 과점 상태에 있다. 여기서 과점은 단순히 숫자보다는 시장지배력을 의미한다. 그 결과 국내 은행의 순이자마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위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은행 상품은 차별성이 미약하다. 국민은행이 빌리는 돈이 신한은행이 빌리는 돈과 다를 바 없고 우리은행이 빌려주는 돈이 하나은행이 빌려주는 돈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수신 상품에 차별성이 없다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은행은 공격적인 가격(금리)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아무리 소수가 시장을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내 은행들은 어떻게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는 정부 규제다. 은행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다. 금융시장의 건전성,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시장 실패 등 은행산업을 규제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정부 규제는 은행에 시장지배력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예컨대 정부가 금융시장의 건전성 강화를 위해 대출을 제한하면 대출과 이에 상응하는 예금을 늘리기 위한 가격 경쟁은 약화하고 예대금리차가 늘어난다. 정부가 주요 금융 업무를 은행에만 허용하면 은행권 밖으로부터의 경쟁 압력이 감소한다.

다른 하나는 은행의 영업 전략이다. 시장지배력은 은행 상품의 수요탄력성에 반비례한다. 한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이나 예금금리 인하에 따라 고객들이 다른 은행이나 금융회사로 대출과 예금을 쉽게 옮길 수 있다면 수요탄력성은 높아지고 가격 경쟁은 격화된다. 이에 은행은 고객의 이탈을 막고 고착(lock-in)시켜 수요탄력성을 낮추는 전략을 동원한다. 기업에 대한 주거래 관계금융, 가계에 대한 묶음상품 우대금리, 중도반환 수수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은행의 시장지배력이 단순히 숫자에 있지 않으니 은행을 한두 개 더 늘린다고 예대금리차가 줄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은행이 신설됐음에도 시중은행의 시장지배력은 여전함에서 알 수 있다. 결국 금융시장의 건전성과 관계없는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없애는 것이 경쟁을 유도하는 길이다. 더불어 고객들이 쉽게 다른 은행이나 금융회사로 옮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수요탄력성을 올려야 한다. 물론 은행의 부당한 경쟁제한 행위에 대해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압박에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내렸지만, 예금금리를 더 내려 예대금리차는 오히려 확대됐다고 한다. 과연 윤석열 정부가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은행산업의 경쟁을 촉진해 예대금리차를 줄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