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제안한 것은 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국회의장 산하 자문위를 통해 마련한 세 가지 선거제 개편안 중 두 개 안에 지역구 수 유지 및 비례대표 50명 증원 방안이 들어 있다. 우리 국회가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도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집단으로 각인된 판에 제대로 된 인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 의장은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들고 있고, 의원 수를 늘리되 보수 총량을 묶으면 국민이 수용할 것이라는 전제도 깔고 있다. 그러나 의원 수 확대를 그렇게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지금도 고삐 풀린 규제·포퓰리즘 입법 폭주로 인한 폐해가 이만저만 아닌데, 의원을 더 늘리면 대체 어떻게 감당할 건가. 보수 총량을 동결해도 의원 1인당 보좌진 수를 줄이지 않으면 연간 700억원가량 더 소요된다. 선거 때마다 나온 연봉 30% 삭감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더 올려 받아 온 것을 보면 ‘보수 총량 동결’ 약속도 믿기 어렵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몇 배 넓은 사무실 등 100개가 넘는다는 특권도 숱하게 폐지하겠다고 해놓고 말짱 도루묵이 되는 마당이다.

비례대표도 무턱대고 늘릴 일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원내에 진출시켜 입법 활동을 뒷받침한다는 취지이나,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왜 이런 제도를 두나 싶다. 후보 선정부터 계파 보스의 자기 사람 심기 경쟁으로 인해 밀실야합·돈거래 등 숱한 잡음을 일으켰고, 시민단체와 운동권 인사들의 자리 챙기기 용도로 변질됐다. 의원이 된 뒤엔 출신 직능단체 이익만 대변하는 데 힘을 쏟는 게 보통이다. 전문성 발휘는커녕 계파 보스의 전위대를 자처하고, 차기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기 쉬운 곳을 골라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는 게 비례대표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21대 총선 땐 위성정당을 급조해 비례대표 금배지를 단 다음 거대 정당으로 옮겨간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다. 오죽하면 비례대표를 두고 정당 국고보조금, 의원 불체포·면책특권과 함께 없애야 할 3폐라는 말까지 나오겠나.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의원 증원에 대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민심을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김 의장은 의원 증원으로 기득권을 늘려줄 게 아니라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