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북한 식량난과 백마 수입
“모두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도록 하겠다.” 북한 김일성이 1962년 천리마운동을 독려하며 한 말이다. 이 말은 주민들에게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선전 구호가 됐다. 그러나 공산주의 경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북한은 1970년대 대외채무 지급 능력을 상실했다. 1차 6개년계획(1971~1976년), 2차 계획(1978~1984년) 모두 실패하면서 경제 사정은 더 악화했다.

이에 따른 외환 부족으로 밀가루 등 식량 수입에 차질이 생기고 비료도 모자라 배급량이 줄기 시작했다. 외환을 충당하기 위해 외교관들이 마약 밀수에 손을 대고, 1990년 전후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슈퍼노트)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소련과 동구 공산국가의 붕괴는 북한에 치명타가 됐다. 이들 국가로부터의 유·무상 지원이 끊어지고, 여러 해 홍수까지 겹쳐 1994년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돼 5년간 굶어죽은 사람이 200만~300만 명에 달했다.

그 후 금강산 관광 시작과 개성공단 가동으로 달러가 들어오면서 식량 사정이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핵·미사일 도발로 인한 제재로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궁핍해졌다. 김정일은 2010년 1월 김일성의 ‘이밥에 고깃국, 비단옷’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 처지다. 식량난은 60년을 넘기고 있다. 통일부 대변인은 어제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 일부 지역에서 굶어죽는 주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제2 고난의 행군’이란 말도 나온다.

북한 식량 수요는 연간 약 560만t이지만, 공급량은 100만t 이상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지난해 미사일 도발 비용으로 최소 2억달러(약 2590억원)에서 5억6000만달러(약 7250억원)를 날렸다. 식량 부족분을 최소 60% 충당할 수 있는 돈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러시아와 교역을 재개하며 생필품보다 김정은 가족이 탈 백마부터 가장 먼저 수입했다. 주민들은 굶어죽건 말건 안중에도 없다.

김정은이 열 살짜리 딸을 잇달아 공개석상에 데리고 나와 부각시킨 것도 식량난에 따른 주민 불만을 ‘백두혈통’ 충성으로 무마하려는 상징 조작에 다름 아니다. 거대한 극장국가의 희극이요 비극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