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챗GPT라는 또 다른 늑대
‘늑대가 온다?’ 또 시작인가? 동화에선 몇 번 거짓 경고를 한 소년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현실 속 소년은 잘만 나가는 것 같다. 초지일관 늑대를 고집하지 않고 호랑이, 푸마, 사자로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다’라는 후렴구만 반복하면서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1956년, 한 학회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20년 뒤’에 이게 인간의 두뇌를 넘어설 거라고 겁나는 발표를 했다. 한 해 뒤,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면서 미국이 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고 인간의 두뇌를 넘어선다는 그 기술마저 밀리면 끝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고 ‘20년’이 흘러 약속의 1976년이 왔다. 두뇌를 뛰어넘는(?) PC도 안 나왔다. 대략 허무!

그래서 전문가 분들은 좀 바뀌었을까? 여전히 ‘온다’는 후렴구를 반복하신다. 결말에서 왕자나 공주가 아니라 풍족한 연구비와 투자를 받은 자신이 행복해지는 동화라도 쓰시나 보다. 오죽했으면 미국 기계지능연구소가 ‘그들은 20년 뒤에 AI의 시대가 온다고 주장해왔다. 70년 전부터 반복해서’라고 비아냥댔을까. MIT 교수였던 로드니 브룩스에게 ‘언제쯤이면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질까요?’라고 질문을 했었다. ‘뒷동산을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달에 닿을 수 있다는 말과 같지요’라고 답했다. 우주만큼 복잡하다는 인간의 두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걸 뛰어넘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란다. 이분 천재다.

그동안 호출된 늑대들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 의사를 대신한다던 IBM 왓슨? 여전히 그 자리이고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알파고, 여전히 바둑과 게임에 진심인 것 같고 자율주행은 레벨3 언저리에서 긴 세월을 허비할 태세에 들어섰다. 메타버스? 그 도구를 착용했다가 멀미에 목 디스크까지 올 뻔했다. 그런데 다시 챗GPT? 다시 ‘이번에는 다르다’고 우기는 건가? 투자금이 필요한 기술기업과 클릭 수를 원하는 언론사 간 상생협력 구조의 신종 늑대는 아닐까?

공학용 계산기가 나왔을 때 시험장 반입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지금은 시험장에 그 계산기 지참이 기본이다. 그 신박한 물건, 공대생의 행복에 크게 기여했지만 내겐 별 영향이 없었다. 한때 인터넷의 바다에서 정보를 잘 찾아내는 ‘정보검색사’가 인기였다. 무려 국가자격증이었다. 구글이 등장해서 그 자격이 필요 없는 세상을 열었고 나는 크게 행복해졌다. 챗GPT, 더 나은 검색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기술이지만 아무리 봐도 당분간은 챗(수다)에 한정될 것 같다. 뭔가 ‘온다’는 호들갑에 그만 흔들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가능성과 한계점을 차분하게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