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미안하다' '죄송하다'…셀프 면죄부의 언어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벌금형 판결을 받은 윤미향 의원을 향해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 것은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마치 헤어진 연인들이 서로 오해를 풀고 예전의 다정함을 찾아가는 듯한 스토리 라인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무리 극적일지라도 윤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 돈을 떼어먹었다는 죄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장동 50억원’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곽상도 전 의원은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 누구도 그에게 “오해를 풀겠다”고 다가서지 않았다. 그게 상식이고 정상이다. 세상엔 직접 안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많다. 윤 의원이나 곽 전 의원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증거능력을 요구하는 법정 바깥에서 이미 국민들에게 심중한 죄를 저질렀다.

타락한 사제들처럼 면죄부를 스스로 만들고 내주는 상황은 또 다른 곳에서도 목격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법정구속만 면했을 뿐, 결코 가볍지 않은 유죄판결을 받고도 일부 무죄에 대해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허세다. 그의 딸 민은 “나는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며 비판자들을 향해 한판 붙자고 만용을 부렸다. 지지자들이 결집하자 ‘같은 편’이라는 싸구려 연대 의식이 흥행에 불을 지핀다. 후원금 사기 등과 같은 파렴치로 해외 도피 의혹을 받고 있는 윤지오까지 조민을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분위기 파악은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도와주지 못해 너무나 죄송스럽다”고 사과한 데 이르러선 실소를 넘어 차라리 연민의 마음이 든다. 조민이라고 같은 편으로 엮이는 것을 달가워했을까 싶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열 살짜리 딸아이를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세운 것을 보면서 북한 체제에 퇴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전체주의 권력도 이런 방식으로 인민들을 농단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팬덤과 편가르기에 편승한 민주주의 권력도 속절없이 퇴락해간다. 평양 거리의 열광적 환호처럼 지지자들은 기꺼이 맹종과 굴종의 대열에 앞장선다. 부패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들은 분열과 비방과 저주의 언어들로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대결을 부추긴다. 추종자들의 전투욕을 자극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법 집행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선전술을 구사한다.

옳고 그른 보편적 도덕심조차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진영정치의 연대감은 법의 지배를 근본적으로 허문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 입법을 다루는 정치인들에겐 그 자체로 중대한 범죄다. 우리 모두는 법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 관계없이, 수사·재판 권력에 상관없이 법을 지켜야 한다. 사전에 모르고 어긴 범죄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게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 여론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국민들의 정치적 지향점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정치가 모든 사안을 빨아들이면서 의견과 판단을 유보하는 회색인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소속 진영에 대한 비판과 선택적 이탈, 상대 진영에 대한 배려와 관용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우수한 자질과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사람들이다.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위기를 견뎌내는 힘이 강하다. 분단과 전쟁, 궁핍의 질곡을 딛고 길어올린 경제적 문화적 성취는 세계적인 서사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대단한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위대한 대한민국을 꿈꾸지 못한다. 정치적 미명과 뒤틀린 욕망의 혼돈 속에서 서로 미워하고 환대하지 못하는 상념의 바다를 괴롭게 떠돌고 있다. 마치 멀쩡한 직장인이 예비군복을 입자마자 표변하는 것처럼, 진영으로 갈라진 광장의 허공을 향해 헛되이 주먹을 날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치과잉, 정치중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민들의 고양된 지식과 기술과 열정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내전의 거센 자장(磁場)에 사로잡히면 경제와 안보 모두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인들은 국민 다수의 평균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수많은 선거와 재판, 인사청문회에서 거의 예외 없이 드러난 치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논문을 표절하고, 위장전입을 하고, 탈세를 하고, 군대를 기피하고, 이중국적을 즐기고, 거짓말을 하고,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친 인생들 아니었던가. 왜 이런 사람들을 우러러보며 살아야 하는가. 북측 주민들의 맹종에는 혀를 차면서도 왜 우리는 배타적 진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나. 국민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들도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